금융감독원은 지난달 구조조정 대상 기업 40곳을 선정했다. 이 중 27곳은 채권단이 중심이 된 워크아웃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12개 늘어난 것으로 감독당국의 기업 구조조정 방침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업을 살리는 쪽에 무게가 실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기업들의 지원 요청에 몸을 사리고 있다. 8일 채권단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최근 워크아웃 기업인 대한조선 채권을 팔려고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마련한 대한조선에 대한 신규 자금 1,300억원 지원안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조선이 배 8척을 짓는 데 활용할 계획이었던 신규 자금 규모는 1,300억원에서 1,100억원으로 줄어들게 됐다.
문제는 신한은행이 채권을 처분하겠다고 나서면서 다른 채권단도 추가 이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신한은행이 실제로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다음 신규 자금 지원부터는 빠지겠다고 조건부 동의를 밝힌 상태다. 앞으로 추가 지원 필요 시 나머지 채권단도 지원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가 경영상 큰 문제가 없는데 채권단이 신규 지원을 꺼리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 2009년 워크아웃이 개시된 대한조선은 2011년부터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위탁경영을 받고 있다. 중소 조선사로 발주 물량이 많지 않지만 대우조선이 수주해온 배를 꾸준하게 건조하는 등 경영상 큰 문제가 없다. 산은 관계자는 "대한조선은 현재 구조조정 중인 다른 조선사와 비교하면 재무구조가 양호한 편이어서 신규 자금을 지원해도 큰 손실이 없다"면서 "하지만 은행들이 수익성만 따져서 발을 빼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각자도생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워크아웃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1년 워크아웃을 졸업했다가 최근 유동성 위기에 시달린 팬택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881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팬택은 주채권은행인 산은에 운영자금과 전환사채 차환 목적으로 총 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이 역시 주주협의회를 구성한 신한ㆍ국민ㆍ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의 반발로 자금 지원이 늦어지고 있다. 주주협의회는 팬택의 주식을 처분하는 것이 주주협의회의 역할이지 신규 자금 지원까지 나서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주주협의회의 역할 얘기를 하지만 결국엔 자신들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신규 자금 지원을 꺼리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워크아웃을 졸업한 후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에 대해서도 채권단이 지원을 꺼리는 것은 기업 구조조정을 대하는 은행들의 현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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