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13부. 중기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라 <2> 창업, 일자리 답이 아니다

도소매·식당 등 자영업 60%이상 3년내 문닫아<br>콘텐츠 분야 등 창업독려 글로벌 공략 적극 지원을

한정화(가운데) 중소기업청장이 지난 4월 안산 창업사관학교에서 청년기업가들과 간담회를 하며 애로사항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청


# 50여년간 백열전구를 만들어온 충남의 한 업체는 내년부터 백열전구 생산이 전면 금지됨에 따라 곧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백열전구보다 훨씬 밝고 에너지 효율도 뛰어난 발광다이오드(LED)가 나오면서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신기술 기반의 대체산업이 등장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지만 그만큼 기존 산업의 일자리는 사라지게 됐다.

# 임원승진에서 밀린 대기업 부장 A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대학가에 고깃집을 창업했다. 그는 신선한 재료를 고집하고 친절과 서비스로 1년 만에 직원 10여명을 거느린 사장이 됐다. 입소문을 타고 맛집 반열에 오른 가게는 일명 '대박가게'로 TV에도 소개되고 유명세를 타고 있다. A씨는 가게를 프랜차이즈로 만들어 매장을 더 늘릴 생각이다.

반면 같은 동네 고깃집들은 죽을 맛이다. 바로 옆 고깃집 두 곳은 이미 문을 닫았고 인근 가게들도 손님이 떨어져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A씨는 사업확장으로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일자리도 만들고 있지만 그가 잘되면 잘될수록 그와 경쟁하는 식당들은 손해만 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자리 창출수단으로 창업을 적극 독려하며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창업으로 곧바로 일자리가 순증하지는 않는 게 현실이다. 창업이 일자리 순증으로 연결되려면 시장수요의 총량이 기존보다 늘어야 한다. 즉 내실 있는 소비증가가 뒷받침된 성장이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수시장은 갈수록 위축돼 내수시장만 바라보는 창업이 증가하면 할수록 과당경쟁을 유발, 뺏고 뺏기는 진흙탕 싸움이 되거나 동종업체 간 동반몰락만 초래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일자리 창출=창업'이라는 단순사고에서 탈피해 고부가가치형 첨단기술과 지식서비스 창업은 부추기되 이미 레드오션이 돼버린 일반 자영업과 저급기술 창업은 억제하는 새로운 창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처음부터 내수가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창업을 유도하는 정책과 인식의 대전환도 시급하다.

정부의 창업촉진 정책은 정보기술(IT)ㆍ녹색산업 등 지식ㆍ첨단기술 기반의 창업이 늘어나면 관련 산업이 성장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LED와 백열전구의 관계에서도 보듯이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산업의 등장이 꼭 일자리 총량을 증가시키지는 않는다. 기존 산업이 몰락하면서 관련 일자리는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 기술 발달과 진보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 필연적으로 일자리 감소를 초래하는 만큼 첨단기술이 개발될수록 전체 일자리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지난해 말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꾸준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창출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벤처 거품이 꺼진 지난 2000년 이후에도 성장률은 10% 이상으로 높았지만 종사자 수 증가는 이의 절반도 안 되는 5% 정도에 그쳤다.

특히 2007년과 2008년에는 종사자 수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기술의 진보로 노동생산성이 높아져 되레 고용을 줄이는 결과를 낸 것이다.



아울러 국내 창업현실을 보면 창업으로 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없는지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올 초 현대경제원구원이 펴낸 '창조형 창업이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창업의 90%가 고용주 1인의 생계형 창업이다. 이들이 일자리는 만들어낸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인 셈이다. 게다가 이 중 88%가 과당경쟁 업종으로 지적되는 도소매ㆍ숙박ㆍ음식점 등 서비스업 창업에 몰려 있다.

또 창업기업 중 지식산업 비중은 15%에 불과하고 제조업 창업도 50% 정도가 저기술 부문에 쏠려 첨단 및 고기술 제조업 창업은 특히 부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창업기업들의 58.6%가 3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사업자는 전체의 8.2%에 불과했다. 특히 서비스업 중 개인사업자의 창업과 폐업이 활발한 음식·숙박업은 64%, 도소매업은 62.3%로 생존기간이 더 짧았다.

국내 창업은 한정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생계형 창업이 대부분으로 창업을 하면 할수록 일자리 창출은커녕 극한경쟁에 내밀려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태반인 셈이다. 결국 구매력 증가를 바탕으로 내수시장이 더 성장하거나 창업기업들이 해외시장을 바로 뚫을 수 없다면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구호에만 그칠 가능성이 높다.

노정석 파이브락스 최고전략책임자는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의 60%가 수출에서 나오는 독특한 시장으로 수출기업이 되지 않고 내수시장에만 기대서는 살 수 없는 구조"라며 "모든 스타트업에 해외로 나가라고 등을 떠밀 수는 없지만 게임 등 콘텐츠, IT서비스 등은 창업 초기부터 해외에서 승부를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