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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벌써 '거품' 보인다
입력1999-06-13 00:00:00
수정
1999.06.13 00:00:00
권홍우 기자
- 증시.부동산시장 과열… 수입.소비도 급증 -- 본격 회복전 다시 추락우려… 정부선 팔짱 -
경기가 본격 회복되기도 전에 거품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수출경쟁력 회복을 이끈 쌍두마차인 환율과 임금이 들먹거리고 일부 재벌그룹은 증시활황을 통해 유입된 자금을 바탕으로 구조조정 일정을 미루고 있다.
특히 지난해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집중 공급된 통화가 증시 부동산 등 자산시장에 몰리면서 실물경제 회복속도이상 수입과 소비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물가불안 심리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IMF) 지원, 전국민의 고통감수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끝에 겨우 치유 가능성이 엿보이던 고비용 구조가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정부는 지표상 드러난 경제성과를 과대 포장하는데만 급급, 불안요인을 사전에 제거할 시기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만성적인 재정적자 상황을 외면한 채 2차 추경예산 편성을 둘러싸고 당정간 목소리가 엇갈리는가 하면 내년 세출예산을 무려 100조원이상 경쟁적으로 요구하는 등 정부가 오히려 거품 조장에 앞장서는 게 아니냐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통화팽창= 돈이 워낙 많이 풀려 있다. 지난 98년 한해동안 풀려나간 돈은 모두 87조3,419억원(M3기준). 실물경기 회복을 돕기 위해 통화를 대규모로 공급한 것이다. 한국은행이 마음놓고 통화공급을 늘린 것은 경기 침체와 신용경색 여파로 통화증가가 물가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적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들어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통화 유통속도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이너스 12.7%였던 통화유통속도가 올 1·4분기중 마이너스 5.8%로 회복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통화공급을 지속할 때 실물부문의 자금수요보다 많은 초과유동성이 발생, 거품 조장과 물가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다. 97년말 23조4,709억원에 불과하던 통화채 발행잔액이 51조원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그동안 통화가 얼마나 많이 풀렸는지 반증한다.
아직까지 인플레 우려가 없다는게 한은의 공식입장이지만 잠재 성장률과 실질 성장률간의 차이를 나타내는 GDP갭 추정치가 지난해 8월 6~9%에서 1·4분기에는 2%로 바짝 좁혀졌다. 거품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지표다.
◆거품의 출발점, 통계= 통계 자체에 거품이 있다. 지표상으로 지난 1·4분기중 우리 경제는 전년비 4.6% 성장했다. 1~5월중 물가상승률도 평균 0.65%로 사상 최저수준이다. 겉으로는 더없이 훌륭한 성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수치는 전년동기 대비라는 통계 기준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는 지적이 있다. IMF이전과 비교하면 성장률은 0.9%수준에 불과하며 지난해 물가 상승률(소비자 7.5%)을 감안할 때 현재의 물가는 IMF이전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치적 홍보, 거품을 망각시키는 거품= 진짜 우려할 일은 정부가 계절적 요인이나 통계기술상 특수성은 접어둔 채 입맛에 맞는 단기결과만 부풀려 통계지표가 마치 실상인 것처럼 자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계은행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마치 IMF를 졸업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경제에서 절반의 성공이란 없다. 성공과 실패, 생존과 패배만이 있는게 경제』라며 『실체를 외면하고 겉으로의 성과만 드러낸다면 거품의 폐해는 현실로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부처는 거품 경쟁중= 정부는 일단 쓰고 보자는 분위기다. 1차 추경예산 2조7,000억원을 확정한 데 이어 다시 3조원에 육박하는 2차 추경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다. 정부 각부처의 내년 예산요구액은 100조8,574억원에 달한다.
올해 예산보다 무려 24.6%나 증가한 규모. 예산당국은 이를 6%선에서 억제할 방침이지만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 압력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세수 증대와 공기업 매각 등으로 생긴 여유자금을 재정적자 감축에 충당하지 않고 곧바로 지출해 버린다면 중기재정계획상 약속한 2006년 균형예산 회복이 공염불에 그치는 것은 물론 간신히 회복추세인 국내 경기를 과열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
◆불안한 자산시장= 부동산과 증시도 불안하다. 지난 5월중 주택청약예금 잔액은 1,409억원 늘어나 지난 3월 이후 증가세를 지속하고 있다. 5월말 현재 청약예금 잔액은 모두 2조5,063억원. 작년 5월(2조5,975억원) 이후 최고치다. 수십억원대 아파트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물가불안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는 재경부도 『부동산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거품 그림자가 엿보이기 시작한다는 판단때문이다.
증시도 문제다. 이틀간 100포인트가 넘는 등락은 증시의 취약상과 투자심리 불안을 반영한다. 그럼에도 저금리 여파로 시중자금은 증권사 고객예탁금과 투신사 수익증권에 쇄도하고 있다.
완전개방된 국내 증시의 투자자금은 국내외 여건이 삐끗하는 순간 일제히 핫머니로 돌변, 환율 변동과 물가·부동산 가격 동요로 비화될 위험성이 크다.
◆구조조정이 흔들린다= 증시를 통한 자금배분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검증해 볼 문제다. 올해 기업들의 유상증자 물량은 30조~40조원. 이달 물량만 7조원에 달한다. 이는 90~97년까지 연중발행액보다 더 큰 규모다. 5월말까지 유상증자는 이미 10조원을 넘었다.
대규모 유상증자는 기업의 재무구조를 호전시키는 등 긍정적 측면이 많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될 소지가 크다. 재벌계열 투신사와 증권사를 통해 유입된 자금이 우량기업 뿐 아니라 부실계열사 지원용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금배분이 왜곡되면 구조조정은 물건너가기 십상이다.
◆꿈틀대는 임금인상= 지난 1~4월중 종업원 10명이상 사업체의 월평균 명목임금은 150.2만원으로 전년동기보다 6.1% 상승했다. 저임금과 고환율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해 온 양대축이었다.
원화절상(환율하락)이 가속되는 가운데 임금까지 흔들리면 수출경쟁력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다. 임금인상이 다른 부문의 거품과 맞물릴 경우 물가불안과 함께 고지가-고금리의 고비용 구조를 재연시키기 십상이다.
옷로비 사건을 계기로 다시 촉발된 상대적 박탈감과 조폐공사 파업유도 논란에 따른 노동계 반발로 노동계의 자기 몫 되찾기 요구는 더 거세질 것으로 우려된다.
◆되풀이 되는 정책실패= 연세대 박진근(朴振根) 교수는 수입의존형인 한국경제의 체질상 매년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요인을 구조적으로 갖고 있는게 현실이라고 강조한다. 월남특수와 중동특수, 3저호황, 엔고호황 만이 예외였다.
반짝 경상수지에 따른 흑자의 끝은 항상 인플레와 수지악화,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하지만 정부는 그 때마다 흑자기조에 들어섰다고 자화자찬했다. 88년과 93년에도 그랬다. 정부는 이번에도 「IMF 탈출, 선순환 구조 진입, 약속을 지킨 대통령」을 부각시키고 있다.
◆저금리·저성장 적응해야 =이성태(李成太) 한은 조사국장은 『기업이든 개인이든 저금리·저물가 구조에 익숙치 않다』며 『저성장에 맞는 내실위주 장기투자 패턴에 적응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금리에 실망한 자금이 과거처럼 과소비나 투기에 빠지거나 저금리 조달에 자신을 얻은 기업들이 과잉차입 투자행태를 재연한다면 사태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李국장은 『지속적 구조조정과 함께, 중후장대(重厚長大)형 투자보다 신상품·기술집약·벤처·중소기업 위주의 투자가 시급하다』며 『모든 경제주체들이 질적인 저성장이 양(量) 위주의 고성장보다 바람직하다는 데 공감하고 행동해야 불필요한 거품을 불식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홍우 기자 HONGW@ 온종훈 기자JHOHN@ 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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