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주택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공급 시스템은 절대적으로 주택 수가 부족하던 과거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곽 신도시·택지개발지구에 적게는 수천 가구에서 많게는 수만 가구의 물량을 단기간에 집중 공급하면서 오히려 주택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 상품에 대한 수요가 소득이나 연령에 따라 계층별로 다양해지는 것은 물론 경기 침체로 미분양 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규모 택지를 공급해 주택을 판매하는 '대량 공급-대량 미분양' 현실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행 주택 공급 제도라는 지적이다.
특히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주택 분양에 치중함으로써 자족 기능을 갖추지 못한 베드타운을 양산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1기 신도시처럼 재생 불가능한 노후 도시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수도권 외곽보다는 도심 고밀 개발을 허용해 꽉 막힌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를 해소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 정부의 핵심 주거공약인 '행복주택'의 경우 수요 계층이 젊은 대학생과 신혼부부로 한정돼 있는 만큼 용적률 인센티브 제공을 통한 민간의 개발을 대폭 허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한 첫 단추로 꼽히는 것이 기부채납 관련 인센티브 규정 명문화다. 민간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은 "현행 주택법에서는 기부채납에 따른 인센티브 관련 규정이 없어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용적률을 임의로 하향 조정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용적률 상향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도심 내 중소형 주택 공급이 한층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업 과정에서 근거 규정조차 모호한 과도한 기부채납은 도심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심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공공시설 일부는 사업자와 국가·지방자치단체가 분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현행 택지 공급 및 개발의 탄력적 운용 역시 소규모 맞춤형 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선결 과제다.
정부는 지난 2012년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분할 모집 단지 기준을 400가구 이상에서 200가구 이상 단지로, 입주자 분할 모집의 최소 단위를 기존 300가구 이상에서 50가구 이상으로 축소했다. 기존 3회까지만 가능했던 분할 분양 횟수도 5회까지 늘렸다. 모집 차수에 따라 분양가와 평면을 차별화해 공급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공공택지의 경우 여전히 제도상의 문제 때문에 여전히 '원샷' 방식의 공급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업계획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적게는 500가구 이상의 대규모 단지를 일시에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주안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00가구 이상의 대형 블록의 경우 택지를 시차를 두고 분할 공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수요 부족으로 주택 미분양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형 필지를 받는 것은 건설사에는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00가구 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것은 민간 건설사뿐만이 아니다. 택지의 주요 공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역시 막대한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용 택지의 조속한 매각이 절실하다. 그러나 LH가 고객이 잔금약정일까지 해약을 요구할 경우 언제든지 계약금은 원금으로, 납부한 중도금은 연 5%의 이자를 가산해 환불까지 해주는 토지리턴제를 도입했음에도 '경쟁입찰→수의계약→토지리턴제' 방식으로 택지 매각 공고를 수차례 고쳐 수요자를 찾지 못하는 상황은 반복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