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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명절만 되면 괴로워! 벌써부터 설날도 걱정

■ '그들만의 추석'… 명절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혹은 도시로 떠난 자식과 손주를 품에 안을 생각에 모두들 들떠 있지만 명절이 오히려 괴로운 사람들도 있다. 명절 때면 음식 준비와 쏟아져나오는 설거지로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주부들, 며느리 도리 다하느라 짜증난 아내 눈치 보면서 '가시 방석'에 앉은 듯한 남편들, 결혼은 언제 하냐며 친척들 추궁받는 미혼 남녀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친척들 볼 면목 없는 구직자들에겐 즐거운 명절이 남의 얘기일 뿐이다. 명절만 되면 남모르게 가슴앓이를 하며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속 사정을 들어봤다. ◇아내 "빈둥대는 남편 제일 미워" 성역할, 고정 관념 버려야 워킹우먼인 진미선(38ㆍ이하 모두 가명 처리) 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꼭 부부 싸움을 한다. 시댁이 전남 무안인 진 씨는 시어머니가 명절 음식을 너무 많이 준비하는 탓에 명절 전 하루 이틀은 연차를 내고 시댁에 내려가 일을 거들어야 한다. 말단 직원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팀장급이 된 후로는 부하 직원한테 면목이 서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다. 진 씨는 "다른 집들은 명절 음식을 간소화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사먹기도 하는데 유독 우리 시어머니만 집에서 직접 송편을 빚고 김치도 대여섯가지나 담그다 보니 명절이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이 아내 입장을 헤아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시어머니 역성을 들 땐 더 견디기 어렵다. 진 씨는 "남편은 내가 힘들다고 하면 나이 드신 어머니가 자식 위해 음식 준비하는 걸 타박한다고 싫은 소리를 해 결국 말다툼을 하게 되고 한참 동안 각 방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종합병원 간호사인 문성미(36) 씨는 명절 때면 친척들과 고스톱 치느라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하다. 남편이 춘천 시댁만 가면 제 세상 만난 것처럼 놀기만 해 얄밉다는 것. 명절이 가까워오면 남편에게 이런 불만을 미리 얘기하고 남편도 이번에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지만 문 씨는 올 추석도 남편의 변화된 모습을 그리 기대하진 않는다. 명절을 앞두고 부부끼리 신경전을 벌이거나 싸우는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상 청정원이 최근 주부 1,3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명절 기간 중 가장 얄미운 사람은 누구냐'는 질문에 35.7%(489명)가 남편이라고 답했다. 남편이 가장 미울 때는 명절 내내 잠만 잘 때(34.7%), 음식 장만, 장 보기 등을 전혀 도와주지 않을 때(26.4%), 시댁만 챙길 때(22.9%)라는 대답이 많았다. 대다수 주부들이 명절 증후군을 겪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고와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두상달 부부행복학교 이사장은 "기성 세대가 갖고 있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역할 분담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명절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하고 시댁 식구들도 따뜻한 말을 건네는 배려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편 "남편은 마음 편한줄 알아?" 부모님·아내 눈치보기 바빠 명절마다 아내의 원성을 사는 남편들도 추석이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명절이면 평소보다 극심해지는 아내들의 '바가지'에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 자칫 부부 관계까지 위기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후코리아가 최근 '명절 때 남편들이 피곤한 이유'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응답자 7,866명 가운데 31.6%(2,468명)가 '부모님ㆍ처가집ㆍ아내 눈치 보느라 피곤하다'를 1위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 '시댁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 달래기'가 21.5%(1,693명), '시댁 가면 빨리 가자던 아내, 친정 가면 갈 생각을 안 한다'가 18%(1,413명)로 뒤를 이었다. 자동차 영업을 하는 정병호(34) 씨는 명절 한 두 달 전부터 아내가 한숨을 내쉴 때면 이만저만 불편한게 아니다. 정 씨는 "다른 집 여자들은 직장 생활을 해도 시댁 가서 일도 잘하고 시어른들한테 애교도 잘 부린다던데 집사람은 평소 늘 하는 집안일인데도 명절에 시댁 가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내가 명절마다 친정에 몇 번이나 갔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정 씨의 본가는 서울이고 처가는 부산이다 보니 처가는 일 년에 고작 한 두 번 가고 그마저도 올해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갈 엄두를 못냈다.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남석현(44) 씨도 "명절을 앞두고 아내 짜증이 늘어나고 그걸 받아줘야 하는 나도 힘들다"며 "친척들이 모이면 형님네는 큰 집으로 이사를 갔네, 누님네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네, 처남은 집안 일을 잘 도와주네 온갖 비교에 시달리다 결국 집에 와서 싸운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그는 명절 직전 일주일은 아내 기분을 맞추려고 술 약속을 자제하고 일찍 들어가서 집안일도 거드는 등 나름대로 점수를 따려고 노력한다. 명절 전후로 부부 관계에 적신호가 켜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결혼한지 1년이 채 안된 김인중(32) 씨 부부는 올 설에 크게 싸운 뒤 현재까지 별거 생활중이다. 아내 성진영 씨는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결혼후 '마마보이' 남편에 실망했다"며 "저런 사람이 아빠 노릇, 남편 노릇을 잘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어 결혼 생활 자체를 재고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추석 연휴엔 각자 보내기로 합의해 성 씨는 해외 여행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놓았다. ◇구직자 "올해도 백수라 죄송합니다" 차례 '뚝딱' 친구 찾아 외출 지방대를 졸업하고 3년째 백수 생활을 면치 못한 이석환(30) 씨. 백수 기간이 길어지자 취업 여부를 묻는 친척들이 부쩍 많아져 명절은 그에게 1년 중 가장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이 씨는 "친척들이 직장 구했냐고 물어볼까봐 얼른 차례를 지내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만나러 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명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한유주(29) 씨는 임용고시를 4차례나 낙방했다. 서른이 다된 나이에 다른 일을 찾기도 부담스러워 좀더 버텨보자 다짐하지만 추석에 친척들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사법고시를 준비중인 김용준(34) 씨는 몇 년전부터 고시에 합격하기 전에는 절대 고향 땅을 밟지 않겠다고 결심한후 올해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작정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구직자 836명을 대상으로 '추석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2.9%가 '친척ㆍ친지의 취업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정신적으로 예민한 구직 시기에는 걱정스러워 건넨 말 한 마디도 상처가 될 수 있는 만큼 명절에는 민감한 질문보다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싱글족 "결혼 제가 알아서 합니다" 친척 지나친 관심 부담스러워 직장인 이시연(35) 씨는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이 나이가 나이인지라 언제 결혼할거냐, 남자친구 있냐 물어보진 않지만 애써 질문을 참고 있는게 느껴져 민망하다. 몇 년전만 해도 명절 때 친구들과 여행을 다녔는데 이제는 친구들도 대부분 결혼해 같이 여행 갈 사람도 없다. 이 씨는 올 추석 연휴가 길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며 이번 추석은 또 무슨 핑계를 대고 명절 자리를 피할 수 있을까 고민중이다. 결혼 못한 미혼 뿐아니라 이혼이나 사별을 겪은 '돌싱(돌아온 싱글)'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명석(42) 씨는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싱글 대디'다. 올초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9살, 4살 남매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최 씨는 "아직 아내가 저 세상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재혼 얘기를 꺼내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모이는 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올초 이혼한 유정연(36) 씨도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다 아직 자신의 이혼 소식을 모르는 친척들이 애 소식을 물을 게 뻔해 명절을 피하고 싶다. 유 씨는 "어른들은 이혼에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이혼 얘기를 하기 싫다"며 "차례만 지내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인 '가연'이 미혼남녀 497명을 대상으로한 조사에서 70% 가량은 추석 연휴를 가족ㆍ친지들과 보내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런 현실로 인해 명절이 가까워지면 결혼정보회사 가입 상담 전화와 가입 건수가 늘어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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