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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올림픽을 앞둔 모스크바. 무대가 오르면 매춘부 로라는 임시숙소에 들어선다. 그녀는 시칠리아 섬 앞바다에 떨어지는 붉은 저녁 노을을 바라보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포주 발렌찌나에게 의미 없는 대화를 건네며 현실을 벗어나고파 한다. 하지만 그녀는 시칠리아섬은 커녕 세계지도 한번 들여 다 본 적이 없다. 항상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하는 로라는 이곳에서 천재 물리학자지만 정신병자가 된 알렉산드르와 사랑에 빠진다. 다른 매춘부 마리아는 발렌찌나의 아들이자 감시 경찰관인 니꼴라이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여기에 자존심 강한 클라라 그리고 이들을 항상 자신의 딸처럼 돌봐주는 안나, 모두 이곳에서 만난 소외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격리된 신세지만, 축배를 들며 올림픽 성공을 기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리아와 니꼴라이는 자신들의 힘든 사랑을 더욱 괴로워하고 결국 마리아는 죽음을 택한다. 정통 러시아 연극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지구연극소가 24일부터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안녕, 모스크바’를 무대에 올린다. 모스크바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러시아의 소외된 삶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역사인식’을 재조명한다. 당시 거리정화라는 명분을 걸고 모스크바시는 매춘부, 알코올중독자, 부랑아 들을 외곽지역 임시숙소에 격리한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세계적 이목이 집중됐던 당시 인터걸의 존재를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지식층이 아닌 창녀, 주인이 아닌 주변인, 주류가 아닌 소외된 자들이 중심이 된 그들만의 삶과 비애와 고뇌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희생을 강요 당했지만 이들에게도 작지만 꿈과 희망이 있었다. 원제 ‘아침 하늘의 별들’(Star in the Morning Sky)에서 느낄 수 있듯이, 아침의 별들은 이제 곧 솟아날 밝은 햇살에 가려 전날 저녁의 별처럼 밝지는 않지만 또 다른 희망의 별이다. 24일부터 5월 8일까지 아룽구지소극장. (02)76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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