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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

끈이나 실 따위를 매어 마디를 이룬 것을 `매듭`이라고 한다. 다른 의미로는 어떤 일과 다른 일 사이의 구별이나 일의 결론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에도 매듭을 짓는다. 세월이 머리와 가슴속에 남긴 기쁘고 슬픈 생채기를 기억하고, 되새김질 하기 위해서다. 잊으면 안되는 일일수록 매듭은 크고 단단하다.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이야 변함이 없지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의미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같은 날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공통적인 경험에 대한 매듭은 달력을 보면 알 수 있다. 달력에는 예수나 석가 등 성인(聖人)들의 탄신일과 광복절ㆍ제헌절 등 경축일, 어버이날ㆍ어린이날 등 각종 기념일이 있다. 설날이나 추석 등 전통적인 명절에서부터 소한과 대한 등 각종 절기 등도 담겨 있다. 달력에는 없지만, 어느 가수의 노래 말에서 딴 `10월의 마지막 밤`과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등 세월은 수많은 매듭들로 연결이 된다.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조상들의 제삿날 등도 중요한 매듭들이다. 오늘은 또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는 날이다. 계미(癸未)년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는 갑신(甲申)년 새해가 시작된다. 오늘 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양의 해는 가고, 원숭이의 해가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계미년 마지막 밤을 아쉬워 하며, 갑신년 새해를 환호할 것이다. 오늘이 가면 계미년은 앞으로 60년 뒤에야 온다. 서양식으로 보면 `2003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오늘과 내일이 같은 날이지만 같지 않은 이유다. 사는 것이 고달플수록 변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커진다. 온순함의 상징인 `양`답지 않게 계미년은 난폭했다. 지구촌은 종교와 인종과 문명과 동서양이 대립하면서 피로 얼룩졌다. 태풍과 지진과 각종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죽이는 광란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다를 것이란 희망을 가져 본다. 하나의 매듭을 짓고 난 뒤의 새출발에 대한 기대감이다. 원숭이는 지혜와 재주를 상징한다. 교만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동물이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크다. 이제 양의 해에 있었던 슬픈 일과 괴로운 일, 미워하는 마음들까지 모두 매듭을 짓자. 그래야 기쁘고, 즐겁고 좋은 일들이 시작된다. 매듭은 어떤 일의 끝이자, 새로운 다른 일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증권부 채수종 차장 sjcha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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