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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투자보호 시스템 구멍… 거래소·검찰, 부도 정보 등 공유 시급

■ 동양서 경남까지… 커지는 투자자 비명<br>대표이사 횡령·배임 등 거래소가 검찰·경찰에 일일이 확인해야 가능<br>금감원 구조조정 리스트 상장사만이라도 발표를

동양증권 노동조합 노조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고소 기자회견에서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현 회장의 대국민 사기극으로 규정하며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지난 9월25일 정오, 코스닥 상장사인 유비프리시젼 전 대표이사와 임원의 횡령ㆍ배임 혐의가 발생했다는 풍문이 한국거래소 공시팀에 잡혔다. 규모는 620억원. 자기자본(51억4,000만원)의 12배다. 상장사 임원의 경우 자기자본의 3% 이상을 횡령ㆍ배임하면 상장폐지 사유가 된다. 거래소가 관련 혐의에 대해 검찰에 공문을 보내고 확인 팩스를 받은 것은 오후2시. 즉시 매매거래정지 조치를 내렸지만 이미 오전에 나온 대규모 공급계약 공시로 주가는 8.50% 급등하고 16만6,729주가 거래된 후였다. 호재만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과 관련된 정보를 가진 기관들 사이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피해만 늘고 있다. 매매거래정지 사안인 상장사 대표이사 횡령ㆍ배임 혐의는 물론 기업구조조정(워크아웃)과 관련된 정보도 한국거래소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거래소는 주먹구구식으로 관련 기관에 정보를 구걸해 받고 있다.

동양시멘트는 9월 말일만 해도 영업이익을 착실히 내고 있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양시멘트는 하루 뒤인 10월1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해 기업의 말만 믿은 투자자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 이날 거래소가 법정관리 신청 소문을 듣고 동양시멘트에 조회를 했지만 돌아온 답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남기업은 10월29일 돌연 기업구조조정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경남기업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차입금 상환 계획 등을 시장에 밝히며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거짓말이 됐다. 속수무책인 거래소는 뒤늦게 거래정지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경남기업의 해명을 듣고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워크아웃 신청의 영향으로 주가가 이틀 동안 20% 넘게 떨어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 같은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관련 기관들과의 정보공유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장사들의 대표적 기업위험인 ▦부도 ▦기업회생절차 ▦횡령ㆍ배임 등과 관련된 정보를 공식적으로 알려야 하는 곳은 은행뿐이다. 이마저도 자본시장법에 따라 올해 1월3일에야 시행돼 은행은 상장사의 어음이나 수표 부도와 관련된 정보제공을 시작했다. 금융결제원도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올해 3월11일부터 거래소에 부도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어음 부도 이외에 거래소가 상장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정보를 곧바로 받을 수 있는 곳은 없다. 워크아웃과 횡령ㆍ배임 혐의와 같은 사안은 거래소 시장정보분석팀에서 일일이 풍문을 듣고 해당 기관에 확인해야 한다. 거래소에 1,768개에 달하는 상장사의 정보를 수집하는 인원은 고작 4명이다. 해당 기관들의 협조가 없으면 확인이 불가능해 투자자들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워크아웃의 경우 금융감독원이 매년 기업구조조정 리스트를 발표하지만 기업의 숫자만 밝힌다. 만약 금감원이 구조조정 리스트 가운데 상장사들만 거래소와 정보를 공유했다면 경남기업과 같은 투자자 피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 리스트 가운데 상장사들만이라도 알려달라고 금감원에 매년 요청하지만 정보공유를 꺼려하고 있다"며 "워크아웃과 관련된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횡령ㆍ배임 혐의 포착도 해당 기업이 검찰이나 법원에 확인해 공시를 하기 전까지는 거래소에서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다. 거래소는 현재 관련 정보를 들으면 일일이 검찰에 공문을 보내 확인을 요청하고 있다. 보통 당일 9시 이후에 확인이 되기 때문에 매매거래정지 이전에 거래가 된 경우가 많다.

거래소의 한 고위관계자는 "20년 전부터 검찰과 경찰 등에 횡령ㆍ배임 혐의와 관련해 거래소에 정보를 주는 '핫라인' 개설을 요구해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검찰 쪽에서는 피의사실공표 문제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관련 기관들이 협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윤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관들 사이의 고유 업무가 있기 때문에 기업위험과 관련된 정보를 강제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하지만 법을 고치지 않고 관련 기관들 간에 정보공유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도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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