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에 성공만 하면 1~2년 뒤에 최소 두배는 벌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미국계 컨설팅업체의 한 직원) ‘망한 부잣집에는 개도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속담은 틀렸다. 적어도 올해 매물로 나올 ‘과거의 대우 계열사’들과 ‘과거의 현대 계열사’들에는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안된다. 간밤에 내린 눈밭 사이로 봄기운이 완연한 2일 오전. 서울역 앞 대우빌딩 주변에서는 말쑥하게 차려 입은 외국인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외국에서 들어온 바이어지만 이들 가운데는 인근 벽산123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알짜로 재탄생한 대우 계열사’ 인수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는 컨설팅 전문가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최근 부실기업으로 분류됐던 기업들이 알짜기업으로 잇달아 부활하면서 치열한 물밑 인수전이 펼쳐지고 있다. 그만큼 해당기업의 몸값도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지고 있다. 불과 1~2년 전의 ‘거저 줍기’ 또는 ‘헐값매각’ 가능성은 기대하기 쉽지 않다. 채권단이나 매각대상 기업들의 어깨에도 점차 힘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부실기업에서 알짜기업으로=대표적인 부실기업으로 분류됐던 하이닉스반도체에 요즘은 ‘부활’이란 단어가 항상 수식어로 따라붙는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순이익이 예상되는 가운데 비메모리사업 매각과 함께 중국 현지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등 경영정상화를 향해 잰 걸음을 하고 있다. 회사측은 올해를 메모리 전문기업으로 출발하는 원년으로 삼아 2년 연속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의 기술력 격차도 좁히고 있다. 지난 2003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 부문 영업이익률(42%)의 3분의1 수준이었던 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0%대로 올라서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유창연 BNP파리바증권 애널리스트는 “꾸준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삼성전자만큼 수익성이 우수한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며 “지난해 시스템LSI사업 부문 매각과 D램시장 약세를 감안하더라도 올해 30%대의 영업이익률은 무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ㆍ새한미디어 등은 부실기업에서 벗어나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등 공격경영을 펼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자동차엔터테인먼트사업 등에 진출한 데 이어 관련기술 확보를 위해 지난해 4월 중소기업 CLD사의 지분 및 특허를 인수하는 등 활발한 투자도 진행하고 있다. 새한미디어는 최근 리튬전지의 양극활물질을 신성장사업으로 적극 육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권단도 새한미디어의 성장성을 감안, 매각의 불발에도 불구하고 출자전환(630억원)과 금리인하를 검토 중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신규사업 진출 등 공격경영은 기업의 몸값을 올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선 경영정상화, 후 매각=구조조정 성과가 기업실적 증가로 이어지며 채권회수에 목숨을 걸었던 은행 등 채권단의 시각도 바뀌고 있다. 우선 경영을 정상화시킨 후 매각해야 기업도 채권단도 윈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하이닉스의 경우 현재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시킨 후 보유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하이닉스 채권단은 10억~15억달러 규모의 채무재조정(만기연장 등)을 실시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두차례나 매각이 무산된 동해펄프도 올해는 무리한 매각추진을 중단하고 채권단 주도하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후 몸값을 올려 매각을 재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환율하락 등으로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의 밀어붙이기식 매각이 채권단이나 회사측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융시장 불안의 주범이었던 LG카드도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기준 1월 LG카드의 연체율은 지난해 12월(17.3%)보다 3.3%포인트 떨어진 14.0%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월(33.8%)에 견줘 무려 19.8%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수익성과 재무구조도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LG카드는 지난해 9월 22개월 만에 월별 흑자(176억원)로 전환한 후 지난 1월까지 5개월 연속 흑자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LG카드 관계자는 “채권단이 경영정상화 이후 매각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중요한 건 자산 건전성과 수익성이 개선될 경우 매각대금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라며 “내수경기까지 회복된다면 완전 경영정상화 시기가 더 앞당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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