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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한 명이 몸에 지니고 있는 세균의 수는 100조~1,000조개에 달한다. 대다수 세균은 장(腸)에 몰려 있다. 하지만 모든 세균이 해로운 것은 아니다. 유산균처럼 몸에 유리한 세균도 있다. 이처럼 장에는 ‘공생세균’이 존재해 신체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장에 존재하는 공생세균은 500~1,000종. 공생세균이 공생 메커니즘을 통해 식중독균 같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몸을 지켜낸다. 이화여대 이원재 생명과학부 교수(40ㆍ생체공생시스템창의연구단 단장)는 ‘장내 항상성 유지를 위한 공생세균과 장 면역시스템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규명한 독보적인 연구자다. 이 교수는 장내 미생물 증식을 조절하는 체내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논문들을 ‘사이언스’ ‘디벨롭멘털 셀’ 등 세계적인 과학학술지에 발표해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소장 과학자다. 이 교수는 ‘장내 세균들은 일반적으로 질서를 갖추면서 존재하지만 항생제 등 외부적 요인으로 이 같은 질서에 혼돈이 생기면 만성 염증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학계의 가설을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그는 장 염증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장내 세균의 변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잠 염증질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동시에 치료제 개발을 위한 학문적 토대를 마련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의 점막 상피세포에 존재하는 공생세균은 점막 상피세포 내 공생유전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장내 세균의 안정성을 유지, 면역력을 높여준다. 공생세균은 평상시 자체 면역체계를 유지해 장 질환을 예방한다. 하지만 면역반응에 관계한 공생유전자에 결함을 갖게 하는 숙주는 오히려 심각한 장내 염증관련 질환을 유도하는 해로운 물질로 돌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항생제를 장기 복용하거나 돌연변이 세균들이 발생할 경우 공생세균의 역할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장내 만성 염증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가설을 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사람의 유전자와 비슷한 면이 많고 유전자나 세균 발생 여건을 조작하기 쉬운 초파리를 이용해 공생세균 메커니즘을 찾아냈다. 실험 결과 초파리의 ‘코달’이라는 공생유전자가 평소 면역체계로부터 공생세균을 보호한다. 하지만 유전자의 기능이 억제되면 이로운 공생세균들은 면역체계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된다. 결국 해로운 세균이 늘어나 장내 세균집단의 균형이 무너져 장염을 일으킨다. 실제로 공생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하자 이로운 세균은 크게 줄어든 반면 해로운 세균은 10배 이상 급증했다. 이 교수는 또 장내의 세균 수가 많아지면 ‘듀옥스(duox)’ 효소가 활성산소를 만들어 세균 증식을 억제하며 역할이 끝난 활성산소는 활성산소 제거효소(IRC)에 의해 제거, 장내 세균 수가 적절히 조절돼 현상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듀옥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장내 세균은 최대 1,000배 이상 늘어나 인간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 듀옥스와 같은 물질은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적절한 양이 분비돼야 하며 지나치면 만성 대장염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교수는 경북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11대학에서 생화학석사, 파스퇴르연구소에서 분자생물학 박사와 포스닥(Post-Docㆍ박사 후 연구원)을 거쳤다. 1996년 귀국해 연세대 의대 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귀국 후 12년간 선천면역(innate immunity) 관련 분야를 연구하면서 독자적인 연구영역을 구축해왔다. 장내 세균 연구에 초파리 유전학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장-장내 세균 간 관계에 대한 유전학적 해석을 시도해 연구 모델의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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