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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아는가, 숲 가꾸는 즐거움을…

■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카렐 차페크 지음, 다른 세상 펴냄)<BR>20C초반 체코 대표작가의 원예 에세이<BR>정원사 일상 통해 자연·삶의 의미 조명


그대는 아는가, 숲 가꾸는 즐거움을… ■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카렐 차페크 지음, 다른 세상 펴냄)20C초반 체코 대표작가의 원예 에세이정원사 일상 통해 자연·삶의 의미 조명 홍병문 기자 hbm@sed.co.kr 도시인들은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간다. 발 아래 무엇이 있는지, 머리 위에는 구름이 떠있는지, 빌딩 숲 너머 얼마나 아름다운 산이 펼쳐져 있는지 쳐다볼 틈도 없이 허겁지겁 거리를 스쳐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 밑을 내려다 보지만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짙게 화장한 땅은 좀처럼 맨 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 편리성을 추구하는 아파트에서 녹음이 우거진 정원을 기대하는 건 사치일지 모른다. 도시 속에서 초록빛 사치를 누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난초나 선인장 화분을 베란다에 올려놓는 게 고작이다. 화분 몇 개로 만족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카렐 차페크는 초록 숲을 가꾸는 정원사의 열두 달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대리 만족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책 장을 넘길 때마다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차페크식 유머’는 도무지 지루할 수 없게 만든다. 1월. 거실에서 원예책을 들추는 것으로 만족 못하는 성마른 정원사는 삽자루를 들고 나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깊숙이 삽자루를 밀어넣어 보지만 꽁꽁 얼어 붙은 흙덩이에 삽자루는 부러지기 십상이다. 까막 서리가 위협하는 2월은 정원사에겐 잔혹한 달. 차페크는 “변덕스럽고 기관지염처럼 교활한 2월 대신 아름다운 5월을 늘려 32일로 만들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봄을 기다리는 정원사는 비료를 주고 땅을 파고 흙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을 지팡이에 꿰어오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쯤이다. 에덴 동산을 꿈꾸며 분주한 정원사를 만약 하느님이 부른다면 그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은 좀 바빠서요”라고 답할 뿐이다. 3월. 새싹들은 초록색의 행진 나팔을 불어댄다. 개나리에 이어 라일락 중대가, 그리고 배나무와 사과나무 새싹들이 장중한 퍼레이드에 끼어 든다. 나무를 심는 4월이면 정원사는 나무를 심기에 두 팔과 두 다리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는 여기 저기 심어 놓은 싹을 짓뭉개지 않으려고 “발레리나처럼 한쪽 발 끝으로만 온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하늘을 붕붕 떠다니고, 양다리를 4미터 넓이로 벌리고 나비나 할미새처럼 사뿐 사뿐 걸어 다니고, 3평방 센티미티도 채 안되는 공간에 들어가 모든 것을 피하고, 모든 곳에 도달해야 한다.” 암석 정원을 가꾸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5월, 잡초, 진딧물과 씨름하는 6월이 지나면 하늘을 쳐다보며 애타게 비를 기다려야만 하는 7월이다. 메마른 계절에 물 호스를 들고 정원을 뛰어다니는 정원사는 결국 인간의 무력함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내는 지혜의 어머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정원을 누군가의 손에 맡기고 바캉스를 떠나야 하는 조바심 나는 8월이 지나면 갯개미취와 국화가 꽃을 피우는 9월. 봄에 이어 또 한번 보람을 선사하는 멋진 달이다. 차페크는 눈이 뒤덮는 11월과 12월에도 정원에는 죽음과 같은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새싹이 땅 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겨울을 보며 “미래는 우리 내부에 있기 때문에 미처 알지 못할 뿐”이라고 일깨운다. 카렐 차페크(1890~1938)는 체코가 자랑하는 20세기 초반 대표적 작가다. 요즘엔 보통 명사처럼 쓰이는 ‘로봇(robot)’이라는 말은 그의 희곡 ‘R.U.R (Rossum’s Universal Robotsㆍ로봇)’에서 나왔다. 기계가 인간을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담은 희곡 ‘로봇(1920)’을 비롯해 ‘곤충의 생활(1921)’ 등 인간 사회의 병폐를 풍자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진 3부작 철학 소설 ▦호르두발 ▦유성 ▦평범한 인생을 비롯 ‘길고 긴 의사의 이야기’ 등 동화와 함께 정원사의 일상을 다룬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는 놓치기 아까운 그의 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다. 최근 나온 이 책 말고도 지난 2002년에는 ‘원예가의 열 두달’로 번역돼 출판되기도 했다. 입력시간 : 2005/06/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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