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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은행의 위기

조직이건 개인이건 ‘나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면 최소한 ‘패가망신’은 피할 수 있다. 나가야 할 때 물러서면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를 놓치고는 후회한다. 반면 물러서야 할 때 섣불리 앞으로 치고 나가면 참극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사에서 마오쩌둥(毛澤東)만큼 ‘때’의 흐름을 잘 읽고 활용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마오쩌둥은 1930년대 초 중국 공산당에서 ‘떠오르는 샛별’ 같은 존재였다. 그는 게릴라 전술을 통해 국민당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의 약진은 이내 적을 만들고 만다. 이른바 ‘28인의 볼셰비키’로 불리는 러시아 유학파가 마오쩌둥을 상대로 공세를 시작했다. 이들은 마오쩌둥의 게릴라 전술과 농민혁명을 잘못된 것이라고 공박하면서 국민당과의 전면전을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마침내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농가에 연금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공산당 지도부에 적개심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의 과오를 공공연히 인정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규합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는 데 주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오쩌둥이 바라는 ‘때’가 오고 만다. 28인의 볼셰비키가 이끄는 홍군(紅軍)은 이내 국민당군에 밀리기 시작했다. 군사력이 월등한 국민당과 전면전을 펼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28인의 볼셰비키가 추진한 전략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나자 마오쩌둥은 자연스레 공산당 지휘부로 복귀하게 된다. 마오쩌둥은 적이 강할 때는 후퇴를 서슴지 않았다. 반대파는 이를 ‘패배주의’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적에게도 허점이 생긴다는 게 그의 믿음이었다. 그래서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그 때’를 기다린 것이다. 국내 은행권에서도 지금은 마오쩌둥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은행권 안팎에서 ‘위기’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온다. 하지만 위기의 ‘본질’에 대해서는 은행 내부와 외부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인식의 차이가 ‘더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 은행권 안에서는 순이자마진(NIM) 하락, 증권사에 대한 소액지급결제 방침 등을 위기의 징후로 해석한다. NIM이 떨어지면서 수익이 감소하고 증권사들이 소액결제까지 하게 되면 자산관리계좌(CMA)로 자금 유출이 심화할 수밖에 없으니 ‘위기’라는 얘기다. 그러나 은행들이 외치는 ‘위기’는 다분히 ‘내부 결속용’ 카드라는 느낌을 준다.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금융권의 판 자체를 유리한 구도로 이끌어나가려는 몸부림이라는 해석도 많다. 하지만 은행권 밖에서는 NIM 하락 같은 문제에 대해 심드렁하다. 그것은 은행만의 이야기일 뿐이다. 증권사에 대한 소액결제 허용 문제에 대해서는 증권사들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는 은행에 대한 반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 증권사 임원 재직 시절 “은행X들, 어디 두고 보자”며 불만을 토로했던 것처럼 ‘반(反)은행 정서’는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반은행 정서’의 요체는 “고객이 체감하는 서비스 품질에 비해 가격(수수료ㆍ예대마진)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은행권이 잇단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운 후 우월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 적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특히 경제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은 은행 수수료에 대해 큰 불만을 표시한다. 은행의 덩치는 커졌지만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잇달아 나온다. 이러니 은행을 보는 눈길이 고울 수 없다. 하지만 은행은 아직도 변화를 읽지 못한다는 느낌을 준다. 은행은 현재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도입에 가장 큰 우려를 표시한다. 자통법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은행 못지않게 다른 금융회사도 키워야 비로소 소비자 후생이 늘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을 은행만 모르는 것 같아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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