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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인력 대거 중국행… 'K뷰티 노하우'가 샌다

中 거액 몸값 제시하며 빼가기

화장품업계 엑소더스 조짐까지


# 국내 굴지의 화장품 대기업에서 20여년간 일하며 연구소장까지 맡았던 A씨는 얼마 전 중국 화장품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 약 3억원에 집과 자동차까지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화장품 분야에서 국내를 대표하는 연구자 가운데 하나였던 A씨는 앞으로 중국 업체에서 연구혁신(R&I) 전략 수립과 한국형 개발·생산 시스템 구축 업무를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한국산 화장품의 인기가 치솟자 제품 개발 노하우를 빼가기 위한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거액의 몸값을 내세워 화장품 한류(K뷰티) 핵심인력에 손을 뻗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는 연구인력을 중심으로 엑소더스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2일 화장품 업계에 따르면 급성장하는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현지 로컬 제조업체들이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면서 한국 화장품 업계 전문인력 스카우트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인 B사의 경우 최근 연구는 물론 생산·디자인·마케팅 등의 분야에서 10~20년의 경력을 쌓은 소속직원들이 중국으로 거점을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경쟁력을 자랑하는 중견기업 C사 역시 최근 회사를 떠난 직원이 10명에 달한다. 한국 기업의 중국지사에서 근무하며 한국 고유의 개발·생산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현지 중국인도 러브콜 대상이다. 중국지사의 직원 이직률이 10%를 넘는 기업도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전반적인 인력유출 흐름은 중국 로컬 기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C사 대표는 "대기업이 아닌 우리 회사만 해도 연구인력이 열댓 명은 더 필요할 정도로 화장품 업계는 전반적으로 연구인력 품귀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업계에서 내가 아는 인력만도 20명 남짓이 중국으로 이미 떠났고 전체적으로 보면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100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현지회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력은 국내 대기업 출신 연구·생산인력이다. 특히 퇴직 무렵에 마땅히 옮길 회사가 국내에 드문 현실이 중국행을 결심하게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한다는 후문이다. 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주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국내 일류대 출신으로 대기업 연구 관련부서에서 20년 근무하면 최소 연봉 3억원은 받는다는 공식이 암암리에 자리 잡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막강한 자본력과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화장품 업체들이 국내 우수인력 확보로 기술력까지 갖춘다면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입지가 급속도로 좁아질 것으로 화장품 업계는 내다봤다. 특히 내수시장 정체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중국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중소기업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연구·생산 핵심인력들이 중국으로 가게 되면 국내 기업들이 10년 넘게 시행착오를 거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히트 제품의 개발 스토리는 물론이고 내부적으로 논의된 아이디어, 생산 프로세스 등이 통째로 중국으로 넘어가게 돼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의 입지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재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신규 브랜드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은 50여곳에 달하지만 중국 현지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중국에서 온오프라인 매장을 대거 확보한 대형 화장품 업체들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중소기업들은 전적으로 온라인 영업에 의존하는데다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도 열세를 면치 못해 고전하고 있다. 현재 중국 화장품 기업들의 온라인 플랫폼 시장 점유율은 20%대를 기록하면서 최근 1년 사이 2배 이상 높아졌다. 중국 로컬 업체 상위 9개사는 이미 연평균 32%씩 고성장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가 국내 중소기업의 주요 판매 루트였던 보따리상(타이공) 규제와 위생허가 기준 강화에 나서 수출환경 역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황순욱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뷰티화장품사업팀장은 "이미 중국 로컬 기업들이 전체 시장의 50%를 장악한 상황에서 국내 중소기업들이 중국 진출에 성공한 기존 한국 브랜드들이 해온 것처럼 위생허가 통과 등 치밀한 준비와 장기간에 걸친 브랜드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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