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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모럴해저드 부추긴다
입력2011-08-09 20:23:13
수정
2011.08.09 20:23:13
박재완 “금융질서 교란.. 국가신인도 흔들린다”
“과거 저축은행이 문을 닫아 피해를 본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앞으로도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면 그때마다 손실을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금융권 고위관계자) 금융계에서는 정치권의 저축은행 예금피해자 2억원 보상안은 금융산업의 원칙을 무시하는 상식 밖의 결정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정치권이 예금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정치권의 꼼수에 1인당 5,000만원까지 보장한다는 예금자보호제도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 신인도가 하락할 수 있는 문제라며 정면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국회에서 "금융질서를 교란하고 재정 규율도 훼손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판단하겠지만, 정부는 그런 법안이 채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휘둘리면 국가 신인도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권은 우선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정치권은 특정 지역(부산)과 시점(올해 영업 정지된 곳)만 배려한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난 2008년 9월 이후 영업정지된 저축은행 12곳으로 보상 대상을 확대했다.
하지만 2008년 이전에도 저축은행의 영업정지는 대부분 부실ㆍ불법 대출과 분식회계, 감독당국의 검사소홀이 주요 원인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산 계열과 문을 닫게 된 원인ㆍ과정이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보상해주고, 누구는 내버려뒀다는 점은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투자는 본인 책임 아래 이뤄진다는 금융의 기본원칙이 훼손됐다. 높은 금리를 기대하고 위험도가 높은 금융회사와 거래했을 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예금금리는 1~1.5%포인트, 적금은 2%포인트 정도 높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문을 닫은 저축은행이 한 두개가 아니고 고객들도 저축은행이 문닫는 것을 다 봐왔다” 며 “5,000만원 초과 예금을 전부 보장해주는 것은 정치논리에 금융산업이 휘둘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후순위채 부분도 문제다. 저축은행의 후순위채는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때문에 시중은행 예금금리가 5% 미만인데도 후순위채 금리는 연 8~9%에 이른다. 큰 보상이 따르는 만큼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상품인 셈이다.
예컨대 금융위기로 ‘깡통펀드’가 된 우리은행의 ‘파워인컴펀드’의 경우 원금이 보장된다는 직원의 설명으로 불완전판매가 인정되기는 했지만 손실금액의 절반만 보상해주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가입자들도 상품의 위험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는 게 법원의 논리였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저축은행 안은 후순위채의 경우 불완전판매라면 전액을 보상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신용협동조합 등 다른 금융권역에서 문제가 불거질 경우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느냐는 점도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은행에만 특혜를 줄 명분은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오는 9월말 경영진단 결과가 발표되면 퇴출될 저축은행들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 한번 원칙을 어겨 똑같은 문제가 반복해 생기는 것. 정치권은 현재 2,800억원 정도면 12개 저축은행의 피해자에게 2억원까지 보상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럴 경우 필요자금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선례를 만들면 예금자들의 ‘모럴해저드’를 불러온다고 우려한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저축은행에 관한 한 예금자보호한도를 2억원으로 하겠다는 얘기 아니냐”며 “외환위기 이후 쌓아왔던 금융산업의 원칙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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