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급락이 원·엔 환율 하락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통상 유가와 미 달러화 가치가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유가 하락→달러 강세→엔화 추가 약세'의 연결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유가 하락이 일본의 물가 하방 압력을 가중시키고 추가 완화책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원화는 원유 수입비용 감소에 따른 경상 흑자로 강세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달러 대비로 원화 가치가 상승해도 엔화가치 하락속도가 더 가팔라 수출의 환율효과가 상쇄되거나 되레 불리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원유는 미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유가 하락은 미 달러화 강세를 뜻한다. 예컨대 배럴당 100달러에 거래되던 두바이유가 최근 60달러에 거래되는 것은 달러 가치가 그만큼 뛰었다는 뜻이다. 또 국제유가에 투자했던 자금이 강세를 보이는 달러로 옮겨탈 수 있는 점도 유가 하락이 달러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50달러대로 내려앉은 11일(현지시간) 주요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0.4% 상승했다.
이 같은 달러 강세는 가파른 엔저에 기름을 부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유가 하락으로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둔화하고 추가 부양책이 나오며 엔화 약세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12일 도쿄외환시장에서 개장 전 달러당 118.5엔에 거래됐던 엔·달러 환율은 장중 119.56엔까지 치솟았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은 하락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부터 외환 당국이 원화와 엔화 가치를 동조화해서 움직이도록 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 원화 하락세가 엔화를 못 따라가 원·엔 환율은 100엔당 920원대로 내려앉았다. 12일 오후3시 현재 928원7전(외환은행 고시 기준)에 거래돼 전 거래일보다 3원8전 하락했다. 지난 9일 기준으로는 한 달 동안 원화는 달러 대비 약 2.9% 하락했지만 엔화 가치는 5.9% 떨어지며 엔화가 원화보다 2배 빠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 유가 하락이 원화가치 절상 압력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가격이 떨어지면 경상수지 흑자 증가→원화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삼성증권은 올해 배럴당 100달러 수준인 원유 도입단가가 각각 80달러와 70달러로 하락하면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1,158억달러와 1,485억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연구원은 "최근 원화 가치 하락세가 약해진 것은 유가 하락에 따른 경상흑자 전망이 반영된 탓"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내년 중에는 원·엔 환율이 800원대까지 하락할 수 있다"며 "다만 우리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도 짙어져 하락속도는 가파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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