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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족이란 이름으로 주고받는 '폭력'

■ 가족이라는 병(시모주 아키코 지음, 살림 펴냄)

가장 가까운 대상·보호해야 할 내편

신성불가침 존재 자리잡았지만 서로 이해 노력 없이 상처만 입혀

저자 경험·지인 일화 등 바탕으로 현대사회 '가족 의미' 냉철하게 분석



당신은 가족에 대해 잘 아는가.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의 아버지는 무엇에 의지해 살고 있고(혹은 살았고) 어머니의 요즘 고민은 무엇인가. 당신의 형제·자매는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피를 나눈 사람보다 피 안 섞인 친구와 오히려 말이 더 잘 통하지는 않는가.

한 지붕 아래 긴 세월을 함께 산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쉽게 답할 수 없다. 나날의 생활에 쫓겨, 늘 함께 한다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깊게 헤아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세상 사람에게 가족이란 가장 가까운 대상이자 보호해야 할 내 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신성불가침의 존재로서 행복해야 하고 똘똘 뭉쳐야 하는 무엇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유독 가족 앞에 약한 사람들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자식은 다 커서도 굳이 부모 품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부모 역시 그 앞에서 나약해진다. 어떤 이는 자식의 결혼자금과 신혼집도 응당 아빠 엄마가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펼쳐지는 이해하기 힘든 일. 이게 바로 '가족이라는 병(病)'이다. 책은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상처 주고 서로의 행복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진단하며 진지한 성찰을 모색한다.

일본 NHK 아나운서 출신의 저자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할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책 서문에서 대놓고 말한다. "나는 가족이라는 단위를 싫어한다." 시절에 따라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아버지에 실망했고, 그런 아버지 곁에 머물며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 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반항기 많은 배다른 오빠(저자의 부모는 재혼 부부)와는 일찍이 떨어져 살아 마주 앉아 이야기한 기억이 없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저자가 가족을 이해하기도 전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는 각자의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도대체 나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오랜 시간 우리 시대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저자는 다양한 자신의 경험과 지인의 일화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 가족의 의미를 파헤친다. 짧은 에피소드마다 담긴 메시지는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한 코웃음이자 반박이다.



날카롭고 냉철한 분석이 누군가에겐 일방적인 미움이자 비판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예컨대 저자는 '가족은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보이스 피싱 사기 희생양을 만든다'거나 '매년 연하장에 가족사진을 찍어 보내는 일본의 관습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복을 강매하는 행위'라는 다소 공격적인 비판을 쏟아놓는다.

책은 저자가 죽은 가족에게 부치는 편지로 마무리된다. 그동안 펼쳐내지 못했던 솔직한 질문과 고백에 앞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를 알기 위해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쓴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가족을 아는 것은 즉 자신을 아는 것이다." 책 속엔 '가족'이란 말이 수차례 반복된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무수히 등장했던 두 음절의 단어가 전달하는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1만 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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