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변호사와 회계사ㆍ부동산중개업자 등 비금융전문직까지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이들을 통한 자금세탁 시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범죄자들과 비금융전문직의 검은 돈 거래 확산을 차단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풀이된다. 또한 고소득 전문직의 탈세방지라는 부수적인 효과도 뒤따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자금세탁방지 제도를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선해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겠다는 속내도 담겨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밥그릇을 지키려는 비금융전문직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최종 방안을 도출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변호사ㆍ회계사도 수상한 자금거래 신고해야=최근 금융기관의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비금융전문직을 통한 자금세탁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자금세탁 관련 범죄 가운데 20%가량이 비금융전문직을 통해 발생하는 등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결국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칼을 빼 든 것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의 한 관계자는 "주요 선진국들은 회계사와 귀금속상에 대해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시행하고 있고 변호사의 경우 호주와 영국은 시행하고 있으나 미국과 캐나다는 종사자의 반대로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도 이 같은 국제적 추세에 발맞추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고소득 전문직의 세수 확보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거래를 통해 고소득 전문직의 탈세 방지와 과표 양성화는 물론 부동산 투기 현황 파악이 수월해 질 것이라는 판단이다. 고소득 전문직이 은닉 소득이나 탈루 세액을 현금으로 보관하기보다는 금융거래를 통해 관리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금융거래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면 종합소득 파악을 비롯해 탈세 혐의와 부동산 매매에 따른 실제 차익 등을 이전보다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선진화로의 도약 계기=정부는 우리나라가 지난해 10월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 정회원으로 가입한 것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금융선진국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지난 3월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돼 오는 6월부터는 자금세탁이 의심되는 거래의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에 보고하는 기준이 현행 원화 2,000만원에서 1,000만원, 외국환 1만달러에서 5,000달러로 강화된다. 이와 관련,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변호사와 회계사ㆍ부동산중개인 등 비금융전문직 종사자들도 자금세탁방지 권고사항을 준수하는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게 제도를 개선하겠다며 관련법 개정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자금세탁 혐의거래보고 기준금액을 단계적으로 인하 또는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가는 혐의거래 보고 기준금액을 두지 않고 있다"면서 "기준금액을 일시에 폐지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인하한 뒤 장기적으로는 없앨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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