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음식 홍수의 시대다. TV 속에선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셰프(chef·주방장)가 평범한 냉장고 속 재료로 예술에 가까운 별식(別食)을 만들어 내고, 지역별 맛의 고수들이 치열한 요리 경연을 펼친다. 인터넷은 맛있게 먹는 자와 그를 구경하는 자들이 만나 '먹방'이라 불리는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맛의 향연 속에서 저자는 묻는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에는 어떤 고민이 담겨있을까.'
'철학이 있는 식탁'은 가장 일상적이면서 사소한 식탁 위에 철학을 담자고 말한다. '철학'이란 단어만 듣고 소화 불량을 느낄 필요는 없다. 책은 유기농, 친환경, 동물 복지, 지역 생산 재료 등 음식을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며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그 속에서 실용적인 레시피(조리법)를 제안하는 친숙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예컨대 저자는 '지역 생산 재료'와 관련해 '자급자족'이 아닌 '타급자족'을 주장한다. 흔히 '우리 지역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맛있고 친환경적이다'고들 하지만, 늘 그 말이 맞는 건 아니라는 게 책의 설명이다.
한때 재료의 95%를 해당 지역에서 공수하고 있음을 뽐내던 스웨덴의 미슐랭 별 두 개의 레스토랑 주방장은 얼마 안 가 "원산지보다는 맛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고, 유명 레스토랑 납품업자도 "정직한 셰프라면 질이 최우선, 지역 산은 차선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친환경 측면에서도 식재료의 탄소발자국(재배·생산·운송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량)을 고려할 때 자급보다 타급 재료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덜한 경우도 많다.
식탁 위 철학을 논했다면, 이젠 레시피의 차례다. 저자는 타급자족을 설명한 2장 끝 부분에 여러 지역에서 가져온 재료로 만든 이탈리아의 대표 요리 '리소토'의 조리법을 소개한다. 리소토는 봄에 자신의 지역(영국)에서 수확한 완두·누에콩 같은 작물을 이탈리아산 아르보리오 쌀, 프랑스산 화이트와인, 그리스산 올리브유, 스페인 레몬(즙) 등 바다 건너 들여온 갖가지 재료와 섞어 만들었을 때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제3장 '시간을 지켜보라' 에선 사과와 블랙베리 크럼블, 제5장 '배려 있는 도살'에선 양고기 버거 등 모든 챕터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집약한 음식 조리법으로 마무리돼 읽는 재미를 북돋운다.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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