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데스크 칼럼] '디지털 주홍글씨' 지우기

신문과 라디오ㆍTVㆍ인터넷 등 인류가 고안해낸 각종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우리 주변생활도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47년 전인 지난 60년 9월26일. 미국 시카고CBS 스튜디오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후보들의 TV토론이 있었다. 토론은 미국의 3대 TV와 라디오 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잘 알려진대로 이날의 주인공은 민주당의 케네디 후보와 공화당의 닉슨 후보. 많은 사람들이 8년간 부통령후보로 얼굴이 많이 알려진데다 베테랑 정치인이던 닉슨의 승리를 낙관했다. 반면 케네디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그러나 토론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시선은 케네디에게로 집중됐다. 케네디는 화면에 뚜렷하게 부각되는 짙은 색 양복을 입고 시청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유권자들을 설득해 나간 데 비해 닉슨은 옆 얼굴만 비친 채 ‘나 역시(me too)’만을 연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TV가 논리보다 감성과 이미지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이날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TV를 본 시청자들은 이미지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더욱 호소력 있게 메시지를 전달한 케네디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미국 정치의 일대 혁명기로 보는 이날 TV 공개토론회의 영향으로 케네디는 새 대통령으로 안착했다. 60년대 미국의 TV 수상기 보유가정이 이미 88%로 높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미국의 선거운동을 좌우하게 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방송은 시간제약으로 융통성이 없고 단위시간의 정보량이 적은 것이 한계로 여겨져 왔다. 영화의 유명한 신은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한다. 하지만 TV는 ‘놓칠 수 없는 장면’으로 의식을 갈라놓았던 것도 이점 때문이다. 신문이 TV의 세력확장 속에서도 여전히 위세를 떨쳐왔던 원천이기도 했던 것도 이와 관련 있다. “가장 자세한 TV 뉴스라해도 가장 간략한 신문뉴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비디오의 개발로 반복이나 선택적 시청이 가능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문에 비해서는 미디어의 이용이 일회적이라는 특성과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기술의 발달은 이 같은 미디어별 특성과 차이점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 TV도 각 방송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무한정 재반복해서 볼 수 있고, 라디오도 소리만 전한다는 고유특성에서 벗어나 인터넷을 통해서 ‘보는 라디오 시대’로 진화했다. 이들 각각의 미디어가 생산한 정보들은 인터넷에 차곡차곡 저장되면서 한번 보도된 기사의 유통과 유효기간을 무한대로 늘려놓았다. 게다가 모든 미디어가 인터넷으로 수렴되면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몇 년 전 간통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한 여성 탤런트는 최근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없애달라며 호소하는 중이다.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하면 ‘간통’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한때의 실수 탓에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 수는 없지 않느냐”며 법적인 처벌은 물론 도덕적 비난과 양심의 가책으로 죄값을 충분히 치렀다는 것이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아냈다. 한 언론유관기관이 이처럼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옛 기사로 인해 빚어지는 개인의 피해를 분석하고 구제 방안 등을 찾자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한 토론자는 미리 내놓은 발제문에서 “인터넷은 한번 보도된 기사의 유통과 유효기간을 ‘무한대’로 만들었다”며 “인터넷 시대는 기사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이를 구제할 새로운 사회적 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보화 사회로 발전해오며 혜택도 많아졌지만 부득이한 부작용들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게 요즘 우리의 현실이다. 나만이 아는 남에게 공개하지 못할 치부 하나쯤은 간직하고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가 또한 인간이라는 점 때문에 ‘디지털 주홍글씨’를 떼내줘야 한다. 차제에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들을 용광로에 모두 녹여내 선이 판치는 사회의 원천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