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스프롬이 체불한 가스값 미납을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공급을 중단한 이날 런던 국제상품거래소(ICE)에서 천연가스 7월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날보다 8.8%나 뛴 섬(영국식 가스량 표시단위)당 45.55펜스까지 치솟았다. 이는 지난달 13일 이후 최고치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한 지난 3월3일 이래 가장 큰 상승폭이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은 이날까지 5일 동안 13%나 올랐다. 천연가스 수입량의 3분의1을 러시아에서 수입하는데다 그 수입량의 절반을 우크라이나를 통해 들여오는 유럽 국가들의 불안감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날 영국 ICE 천연가스 가격은 전날보다 1.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유럽의 천연가스 재고가 520억㎥로 역대 최고라는 발표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가스전쟁이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여름철에 벌어진데다 재고도 충분하고 대체 수송로도 확보돼 있어 파괴력이 예전만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06년과 2009년 가스공급 중단으로 전 유럽이 혹한에 떨었던 '학습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유럽의 천연가스 업계 이익단체인 가스인프라스트럭처유럽(GIE)에 따르면 15일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 28개국은 천연가스 최대 비축량의 65%까지 보유하고 있다. 2011년 이래 가장 많은 양이다. 2010년 러시아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에 이르는 가스관 노드스트림이 완공되면서 대체 수송로도 갖췄다. 게다가 지난 겨울 유난히 따듯한 날씨로 가스수요가 줄어 올 초부터 가스값은 40% 가까이 떨어졌다. 이에 영국의 컨설팅 업체 에너지애스펙트는 가스값이 최대 5.6% 이상 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협상이 가을·겨울철까지 길어질 경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의 올겨울 가스수요는 180억~190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0일 낸 보고서에서 여름철 가스수요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이 길어지면 유럽이 가스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또한 가스프롬이 EU로 공급되는 가스까지 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티에리 브로 소시에테제네랄 분석가는 "또한 러시아가 유럽으로 통하는 모든 가스공급을 끊으면 수요를 맞추기 위해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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