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주기는 3년, 설비투자의 주기는 10년이라는 정형화되지 않은 경제 속설이 있다. 이 주기가 올해 겹치면서 경기회복의 조건을 형성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94~96년에 3저의 호기를 타고 왕성하게 이뤄졌던 설비투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크게 증가하고 여기에 맞춰 2년째 침체됐던 소비가 살아날 주기가 겹쳤다는 내용이다. 특히 자동차ㆍ가전제품ㆍ가구 등 내구재 소비는 사이클상 회복국면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내구재의 경우 대부분 고가품인데다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큰 편이라서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상당 폭 완화될 경우 본격적인 소비회복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품목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내구 소비재의 경우 대략 2~3년의 주기를 갖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 자동차ㆍ가구ㆍ가전제품 등의 소비가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대체수요가 생겨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유 본부장은 “내구재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소비 확산 영향이 크다”며 “중산층 이상의 소득자들이 내구재 소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상당한 파급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2년간 내구재 소비는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여왔다. 2002년 13.5%의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던 내구재 소비는 2003년 -8.9%, 2004년 들어서는 1ㆍ4분기 -10.3%, 2ㆍ4분기 -9.6%, 3ㆍ4분기 -4.7% 등 마이너스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연말부터 내구재 소비와 관련한 긍정적인 징후들이 눈에 띄고 있다. 한승철 한국은행 조사총괄팀 차장은 “지난해 하반기 신차 출시 이후 자동차 매출이 조금 좋아졌고 전자제품 소비도 최근 들어 꽤 나아지는 걸로 잡히고 있다”며 “내구재 전체 지표로는 전년동기 대비 여전히 마이너스이지만 지난해 6월 이후 전월 대비로는 플러스를 보이며 감소세가 크게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자동차 신규 등록대수는 전년동월 대비 13.9% 증가한 8만2,101대로 극심한 부진에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최근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2004년 대형 유통업체 매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한파 등의 영향으로 할인점의 가전제품 판매가 증가세로 반전됐다. 한 차장은 “이러한 추세로 볼 때 올 1ㆍ4분기 중 내구재 소비가 플러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내구재 중심의 수요가 늘어나는 시점에서 주가상승, 가계부채 조정 등이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이 서서히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26일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1ㆍ4분기 이후 가계신용 증가율이 점차 높아지고 신용불량자 수도 감소하는 등 그동안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가계부채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면서 소비회복의 밑바탕이 다져지고 있다”며 “특히 올들어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임에 따라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로 인한 유동성 제약 해소 가능성도 추가로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아직 소비회복을 낙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한 차장은 “연말과 연초는 성과급 지급 등에 따른 계절적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회복국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중장기 가계채무 부담이나 미래소득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 등은 여전히 소비를 제약하는 요소”라며 “소비회복이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고용부진ㆍ고용불안 등 구조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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