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28일 “남대문 화재 때 초기진압을 잘했으면 기왓장 몇 장 태우고 말았겠지만 여기에 실패해 몽땅 타버렸다”며 “시장 실패에 대해서는 정부가 거침없이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주역으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내며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이 전 부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설립을 기념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사와 교훈’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시장 실패시 정부는 머뭇거리면 안 된다. 정부 존재는 시장실패에 개입하라는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위기대책으로 “극약처방도 서슴지 말라”면서 “경제대책을 패키지로 쏟아 부어 (입법을) 국회에 며칠 내에 몽땅 처리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부총리는 “감세는 필요하면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재정확대”라고 강조했다. 다만 경기침체에 재정확대가 만능은 아니어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대상 선정과 규모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부총리는 위기대응과 관련한 정부조직 간 엇박자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이원화된 금융감독체제에 대해 그는 “평상시에는 상호견제가 중요하지만 비상시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걸림돌이 된다”며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한 사람이 맡고 당장 같이 일할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국내금융과 국제금융 업무를 통합해야 한다”며 국내외 금융정책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ㆍ한국은행으로 흩어져 있는 문제를 꼬집었다. 이 전 부총리는 특히 위기상황에서 “한은이 독립성에만 집착해 늑장 대응했다”며 한은의 보수성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위기에 걸맞은 조직과 리더십을 강조한 이 전 부총리는 “소수정예의 몽골 기병대와 이를 이끈 칭기즈칸의 리더십이 지금 다시 필요하다”며 “정부 내에 미국의 워룸(war room)처럼 위기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ㆍ점검하고 판단해 대처방안을 강구할 통합대책기구를 한시적이나마 즉시 설치,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부총리는 공직복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저는 더 이상 공직을 안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피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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