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질문 하나. 당신은 광식이인가 광태인가. 이 말은 달리하면, 당신은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 한마디 못 붙이는 쑥맥인가 혹은 바로 수작을 거는 작업남인가하는 질문이다. 뭐, 어느 편이라도 좋다. 소심하든 뻔뻔하든 진실한 사랑을 찾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일 테니. 진실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다고? 그래도 좋다. 우리네들 대충 그렇게 ‘삽질하며’ 살고 있으니. 당신이 소심하고 뻔뻔한, 그렇고 그런 남자라면 이 영화를 볼 신분은 갖춰진 셈이다. ‘삽질의 추억’으로 뒤범벅된 남자들만의 세계로 출발! # 당신, 소심남이건, 작업남이건!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를 한 문장으로 줄이자면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두 형제의 좌충우돌 이야기”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에피소드만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여자에 비해 정신세계가 ‘하수’인 남자들의 성장 영화다. 연애학 개론인 듯 심리 테스트인 듯 하지만, 철저하게 남자의 눈으로 본, 여자와의 관계를 솔직하게 고찰하는 ‘보고서’쯤 된다. 형 광태(김주혁)는 물이 오를대로 오른 서른넷 소심남. 제대 후 복학해서 사진반 동아리에 갓 들어온 새내기 윤경(이요원)을 짝사랑했다. 소심남 광태, 당연히 고백 따윈 했을 리가 없다. 이민갔던 그녀를 7년만에 친구 결혼식에서 만났지만, 그의 소심함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7년 전, 동아리 친구가 낚아챘다면 이번엔 사진관 후배 일웅(정경호)가 끼어든다. 동생 광식(봉태규)은 전형적인 카사노바. “한 여자와 12번 이상 자지 않는다”며 여자와 한 번 잘 때마다 쿠폰에 체크까지 해 가며 횟수에 집착한다.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참가한 마라톤 대회에서 쭉쭉빵빵 경재(김아중)를 만난다. 어처구니없는 작업으로 그녀와의 잠자리에 성공한 광식, 12번을 채우고 오히려 경재에게 차이지만 기분은 시원하지가 않다. 이제 두 형제, 진정한 사랑이 뭔지 고민을 시작한다. # "오빠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
지난 몇 년간, 충무로에선 이른바 ‘쿨한 로맨스’가 대세였다.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류의 ‘쿨’에 죽고 ‘쿨’에 사는 영화들이 그 대표작들. 이 영화 역시 밑바탕의 정서는 ‘쿨’이다. 누구처럼 시시하게 사랑 따위에 목매달고 징징 짜는 일은 없다. 하지만 영화는 그 위에 조금은 진부할 수 있는 ‘진지한 사랑’에 대한 고민을 유치하지 않게 얹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한심하다 싶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들의 ‘삽질’ 속에는 관객들 누구나 한번쯤 고민했을 법한 애처로운 심정이 자연스레 녹아있다. 영화의 백미는 다름아닌 맛깔나는 대사. “OECD 가입국 평균 남녀가 세 번 만나면 잠자리를 갖는데, 우리나라가 평균을 깎아먹는다”는 어이없는 말로 관객을 웃기기 시작하는 영화는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그러나 허투루 넘기기엔 뼈가 있는 대사들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남자는 여자랑 잘 때 속마음을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어 두잖아” “남녀사이에 매직넘버는 12야”같은, 영원히 철들지 않을 거 같은 남자들의 세계를 ‘어록’ 수준의 대사로 표현한다. 보통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 전환 등의 기법은 그리 신기하진 않지만 영화를 좀 더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2시간을 끌고 나가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게 흠이지만,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은 영화를 보는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아, 앞에서 빼먹은 ‘어록’ 하나. “여자들이 이도 저도 아닐 때 남자에게 하는 말이 ‘고맙다’다. 비슷한 말로는 ‘오빤 좋은 사람이에요’가 있겠다.” 남성 동지들, 공감하는지. 남자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하는 말로는 “넌 참 착해“ 혹은 “다 나 때문이야” 정도가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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