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한 사람을 지칭한 문구다. 주인공은 데이비드 흄(David Hume). ‘계몽주의 철학자’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였다. ‘화폐수량설과 정화 유출입 분석에 있어 20세기 중반까지 흄의 이론이 최고였다’는 슘페터의 평가도 있다. 흄의 경제학적 연구가 가려진 이유는 철학에 남긴 흔적이 크기 때문. 영국 공영방송 BBC가 ‘사상 최고의 철학자’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마르크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대표 저술은 ‘인성론’. 26세에 펴낸 대작이다. 1711년 에딘버러의 소지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조숙한 천재 스타일. 대학을 졸업한 15세에 기존 학문에 ‘참을 수 없는 반감을 느끼고’ 18세부터 집필에 들어간 작품이 영어로 쓰여진 철학서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성론이다. 칸트를 ‘오랜 독단에서 깨어나게 만들었다’던 인성론은 정작 흄을 두고두고 괴롭혔다. 교회에서 금서로 꼽을 만큼 무신론적 내용을 담아 교수직에 번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신병자 귀족의 개인교사, 군 장성의 비서, 도서관 사서 등을 전전하면서도 틈틈이 책을 쓰던 그는 43세부터 8년간 집필한 ‘영국사(전6권)’가 히트한 덕에 돈과 명예를 얻었다. 경제 분야에서는 중상주의이론을 공박해 고전학파로 이어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 현대 경제학의 통화론과 신제도학파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국부론’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미스가 막 탈고된 국부론 초고를 들고 달려간 곳도 흄의 집이다. 국부론이 나온 지 5개월 후인 1776년 8월25일 흄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사망(65세)했을 때 스미스는 이런 추도사를 읊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지혜와 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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