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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96>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타계에 부쳐


언제나 여름인 나라. 길을 가다가 음료수 하나만 잘못 버려도 매를 맞을 수 있는 나라. 그렇지만 고연봉 고복지의 글로벌 대기업들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자극하는 나라. 바로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입니다. 옛날 아테네에 버금갈 만큼 ‘놀라운 도시 국가’로 발전한 이 나라는 리콴유라는 지도자에 의해 반석에 올랐습니다.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던 싱가포르는 가난하고 교역할 만한 특별한 자원도 없는, 무역선들의 작은 기항지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2차세계대전 직후 독립할 동안에, 싱가포르는 1959년 때까지 영국이 관할하는 작은 자치정부 중 하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였다는 뜻입니다. 가까스로 얻어낸 영국으로부터의 자유 이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도 중국 교민들과 말레이인들 사이의 유혈 분쟁으로 ‘골칫거리 독립’을 당한 게 1965년입니다. 우리나라가 1961년부터 근대화 정책을 입안하기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4년이 늦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의 지도자였던 리콴유 총리는 작은 나라가 살 길은 서비스라는 점을 알았던지 싱가포르 항만청을 설립, 세계 초일류의 컨테이너가 정박 가능한 항구를 만들었고, 70년대 무렵 전 세계를 고통 속으로 몰고 갔던 석유 파동 와중에도 창이 국제공항이라는 국제적인 교통 중심지를 건립했습니다. 그 뒤부터 싱가포르는 독자적으로 만들어 낸 부존 자원 하나도 없이 서비스, 물류, 금융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땅이 되었으니까요.

부패에 대한 그의 결연한 태도는 유명합니다. 중국인들의 ‘??시’(Quanxi) 문화, 동남아 특유의 관료에 대한 온정주의 문화가 투명성을 해치는 길이라는 점을 잘 알았던 그는, 국가적으로 부패 공무원을 숙청하는 작업을 벌입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동지들이 수뢰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올랐을 때에도 적극적으로 사법 절차를 진행하도록 검찰을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자신의 동생이 특정 부동산을 싸게 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할인받은 100만 싱가포르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증한 일화도 유명합니다. ‘월급쟁이 관료가 명예와 사명감에 의존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부패와 뇌물의 유혹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기업체에 어느 정도 비교 가능한 금액을 보수로 주어야 한다는 공직 사회에 대한 운영 방침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싱가포르식 자본주의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일종의 모범사례로 손꼽힙니다. 비록 리콴유 전 총리의 강한 리더쉽과 26년 간의 장기집권으로 만들어진 부국이지만, 원칙 중심의 민주주의라는 점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물론 정권교체 없는 도시국가를 서구에서는 상당히 싸늘한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도 사실입니다. 정치계에 큰 활력이 제공되지는 못했으나, 경제적으로는 부유한 나라, 사회적으로는 자유로운 아이디어 제기와 소통이 가능한 나라라는 점이 싱가포르를 매력있는 국가로 발돋움하게 한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유교 자본주의 모델이라는 점도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상당수 사회 지도층이 중국 화교인 싱가포르의 상황에서 전통 서구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은 다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리콴유 전 총리는 나름대로 동양적 정서가 살아 있는 시장 체제, 복지 국가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91세로 타계했습니다. 긴 시간 동안 헌신과 고민 끝에 만들어 진 싱가포르는 이제 어떻게 동남아시아와 세계의 관심을 처리할 것인가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리더십이 아쉽다고 하는 시대에 그의 지도력을 많은 이들이 아쉬워할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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