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을 먹다가 시계를 힐끔 살피더니 불현듯 일어선다. '신데렐라 타임'인 1시가 머잖았기 때문이다. 법인카드를 손에 들고 부리나케 밥값을 결제한다. 한국거래소 직원들이 업무상 외부인사와 점심식사를 할 때의 모습이다. 신데렐라가 자정이 되기 전 허겁지겁 궁을 빠져나가는 모습과 닮았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기 전에 미리 카드를 긁었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부인사들과 교류가 많은 거래소 직원들에게 오후1시는 신데렐라 타임으로 불린다. 규정상 점심시간이 정오~1시까지인 탓에 1시 이후에 법인카드를 사용하면 감사실로부터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 내부감사실은 직원들의 법인카드 결제내역과 출입시간을 수시로 모니터링한다. 사내 근무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만약 점심값을 1시 이후에 결제하면 해당 직원은 점심시간 규정을 어긴 사유에 대한 소명자료를 감사실에 제출해야 한다.
내부 감사실의 촘촘한 감시망에 거래소 직원들은 가끔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업무적인 이유로 외부사람과의 식사시간이 길어질 경우 신데렐라 마법이 풀려버리기 전인 1시 이전에 밥값을 계산해 버리는 식이다.
거래소의 한 직원은 "업무와 관련해 의견을 나누다가 시간이 늦어져 1시 이후에 법인카드를 사용하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어 미리 밥값을 계산한다"며 "점심식사를 같이한 상대방이 당황스러워할 때가 많지만 사정을 이야기하면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거래소 직원들은 신데렐라 타임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점심식사를 하다가도 1시가 가까워오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감사실이 나중에 감사원에 실적을 보고해야 하는 만큼 직원들을 압박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며 "다소 빡빡하게 감사를 하다 보니 심리적 부담감이 꽤 크다"고 토로했다.
거래소 감사실은 근무기강 확립 문제인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감사실 관계자는 "업무상 대외활동 때문에 점심시간 규정을 어겼을 때는 소명자료를 제출해 정상참작을 받으면 된다"며 "다른 공공기관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