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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러시아의 정신적 요람

모스크바<br>붉은 요새 크렘린 궁 聖畵 간직한 성 바실리 사원<br>아름다운 붉은 광장은 마치 편안한 '어머니의 품'<br>아르바트 거리에는 슬라브족 특유의 예술혼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은 러시아 역사 문화의 심장부이다. 붉은 광장에는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러시아 대표 건축물 성 바실리 사원, 대형 시계가 달려 있는 스파스카야(구원) 탑,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뚜렷하게 읽을 수 있는 굼 백화점, 레닌 묘 등이 자리하고 있다.

붉은 광장을 스파스카야 탑, 레닌의 묘 등이 둘러싸고 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는 무명 화가들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초상화를 그려준다.

트레티야코프미술관에 전시된 이바노프의 작품 '민중에게 돌아오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성 바실리 사원 안의 성화

전체 면적이 1,707만 5,400㎢(한반도의 78배)로 전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톨스토이ㆍ도스토예프스키ㆍ차이코프스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태어난 나라.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 이후 20세기 지구를 이데올로기로 양분시켰던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그리고 러시아의 심장부에 모스크바가 있다. "러시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스크바를 어머니처럼 느끼고 있다"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모스크바는 러시아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곳인 동시에 러시아 정신의 요람 같은 곳이다. 모스크바는 본래 고트족, 훈족, 슬라브족 등이 살던 땅이었으나 1147년 유리 돌고루키 왕자가 볼로비츠키 언덕에 나무로 된 성채를 쌓으면서 도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고 14세기 무렵에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수도, 15세기 말에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가 됐다. 관광객들이 모스크바에서 맨 먼저 들르는 곳은 단연 크렘린 궁과 붉은 광장이다. 러시아어로 '성채'나 '요새'를 뜻하는 크렘린은 붉은색의 높은 담벼락 전체 둘레가 2.3㎞에 달하고 그 안에 대통령 집무실과 사원, 무기고 등이 있다. 담장 밖으로는 원래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강줄기가 흘렀으나 현재는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이 형성돼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한다. 크렘린은 모스크바를 건설한 유리 돌로루키가 1156년 나무로 된 성채를 쌓으면서 비롯됐다. 이후 몽골의 침입으로 목조로 된 크렘린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됐고 1367~1368년 흰 벽돌로 재건됐다고 한다. 15세기에 이반 3세가 선진 문물을 접한 비잔틴 제국 황녀를 아내로 맞으면서 크렘린에는 황궁뿐 아니라 사원들이 들어섰고 담벼락도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붉은 담벼락 위에 있는 총 20개의 망루와 6개 탑 가운데 삼위일체탑를 통해 들어가면 사원 광장이 나온다. 우스펜스키 사원, 블라고베센스키 사원, 아르항겔스키 사원 등은 이반 3세 때 건축된 것들이다. '성모승천'이란 뜻을 지닌 우스펜스키 사원은 러시아 정교의 중심 사원으로 내부가 온통 성화로 장식돼 있으며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됐던 곳이다. 크렘린 궁 바깥에 자리한 붉은 광장에 들어서면 광장이 붉지도 않은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의문이 생긴다. 현지 가이드 얘기로는 과거 소련 공산당을 상징하는 색이 빨간 색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러시아어로 '붉다'는 의미의 형용사가 '크라스나야'인데 이 단어는 고어로 '아름답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붉은 광장에선 러시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 성 바실리 사원을 볼 수 있다. 1561년 완공된 이 사원은 현재 박물관으로 바뀌어 16세기 프레스코화 등 각종 성화를 감상할 수 있다. 성 바실리 사원 바로 옆에는 스파스카야(구원) 탑이 있는데 대형 시계가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레닌 묘가 자리해 있다. 레닌이 1924년 사망하자 크렘린 벽면에 나무로 된 묘지를 만들었다가 1930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이다. 레닌 묘 맞은 편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백화점인 굼 백화점이 있다. 1893년 처음 세워진 뒤 1953년 확장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입점 업체의 80% 이상이 외국 명품 브랜드여서 자본주의로의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읽을 수 있는 현장이다. 모스크바는 마르크스 거리, 고리키 공원, 게르첸 거리, 아르바트 거리 등 상징적인 거리와 광장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아르바트 거리는 소설 '아르바트 거리의 아이들'(아나톨리 리바코프)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르바트 거리는 '러시아 문화'로 지칭되는 슬라브족 특유의 화려했던 예술과 문화의 일면을 느낄 수 있다. 예전의 아르바트 거리는 지체 높은 귀족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또 푸쉬킨, 고골리, 게르첸, 투르게네프 같은 러시아 대표 작가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시와 음악을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의 성격은 아르바트 거리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거리 한 모퉁이에서 시를 낭송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거리의 화가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곳엔 고려인 3세로 소련이 낳은 불세출의 록커 빅토르 최(1962~1990)를 기념해 러시아 젊은이들이 십 수년에 걸쳐 만든 통곡의 벽과 벽화가 있다. 빅토르 최의 대표곡인 '변화'는 무기력한 소련 체제를 비판한 것으로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원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그의 곡들은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젊은이들이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선에 지지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문의 교통 사고로 29세 젊은 나이에 숨진 빅토르 최를 추모하기 위해 러시아 젊은이들은 매년 8월 15일 곳곳에 모여 대규모 추모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또한가지 모스크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술 호사로는 러시아 미술사를 일별할 수 있는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 방문이다. 상인이자 기업가인 파벨 트레차코프가 미술품을 수집하면서 미술관의 기초를 닦았다. 트레차코프는 "그림들은 모두 인민에게 속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동생이 수집한 서유럽 미술품과 자신의 수집품 전부를 시에 기증했다. 1856년 개관해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함께 러시아 2대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연간 방문객이 15만 명에 이르고 있다. 5만여 작품이 1, 2관으로 나뉜 50여 개 홀에 전시되고 있는데 고대 성화부터 이바노프, 칸딘스키, 샤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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