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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재산목록 1호였지"
입력2000-08-04 00:00:00
수정
2000.08.04 00:00:00
김창익 기자
"전화가 재산목록 1호였지"[창간40돌 특집] 40년전 정보통신 생활
올해로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서울경제신문은 창간 40주년을 맞아 40년전 사람들은 어떻게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40년 전의 정보통신 생활을 보면서 독자 여러분들은 40년후인 2040년 뒤에 정보통신 기술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해 보시기 바랍니다.
역사란 아(나)와 비아(타인)의 투쟁이라고 했지만 고3때 역사 시간만큼은 나와 졸음간의 투쟁사였다. 비몽사몽간에 3,000년이 넘는 장구한 역사를 배웠는데도 지금 기억에 남는건 첫시간에 선생님이 한 말 뿐. 『역사란 과거의 규칙을 발견해 미래의 해법을 찾는 일이다.』
현대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의 홍수속에서 산다. 호출기에서 음성메시지 보내는 법을 알아갈 때쯤 핸드폰이 나오고, 핸드폰 문자메시지의 이모티콘을 이해할 때가 되니 IMT-2000이 고개를 내민다. 이렇게 정신 없이 변하는 정보 통신이 40년 뒤에는 어떤 모습을 가질까.
선생님의 말처럼 역사가 규칙을 가지고 있다면 시간을 X축으로, 통신의 모습을 Y축으로 하는 함수로 표현할 수 있다. X에 2000년을 대입하면 Y=인터넷, 핸드폰이라고 나오는 1차 함수 쯤으로 가정해보자. 만약에 X에 2040년을 대입하면 어떤 해답이 나올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거꾸로 40년전의 과거로 되돌아가 보자.
◇Y=AX(IF X=1960'S, A=한국→Y=백색전화, 쁘롯지)
1962년 4월 7일 동대문에 사는 권모씨는 이른 새벽부터 집을 나섰다. 권씨가 졸린 눈을 부비며 다다른 동대문 전화국 앞에는 이미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추첨이 시작됐다. 권씨가 받아든 번호표에는 2013번이라고 써 있었다. 담당자가 확성기를 대고 2013번이라고 마지막 20번째 번호를 불렀다. 권씨가 당첨된 것이다.
마치 아파트 분양 추첨 현장같다. 사실 이것은 전화 가입권 공개 추첨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화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렸던 당시로서는 가장 공평하고 투명한 방법이었다. 당연히 꼭 필요한 사람이 전화를 못 갖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초과 수요는 프리미엄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전화가 필요한 사람은 당연히 웃돈을 주고라도 전화를 설치해야 했다. 또 전화가 생활 필수품이 아니라 부의 상징쯤으로 여겨지던 때라 웃돈의 액수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권씨는 가입권을 팔라고 찾아온 모 건설회사 사장에게 30만원을 받고 가입권을 넘겼다. 지금으로 따지면 작은 아파트 한 채 값은 거뜬히 넘는 액수였다. 따라서 당시 전화 가입권은 복권 당첨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엔 전화를 사고 팔 수가 있었다. 이를 「백색전화」라고 했다. 이와 구별해 지금처럼 양도가 불가능한 전화를 「청색전화」라고 부른다.
권씨에게 큰 돈이 생기기는 했지만 다음에도 전화 가입권을 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권씨가 전화를 놓을 수 있는 방법은 마찬가지로 다른 이에게 프리미엄을 주고 백색 전화를 사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는 언제나 마땅한 해결책을 찾는다. 당시에 조금만 편법을 쓰면 백색전화를 사지 않더라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이를 「쁘롯지」라고 했다.
권씨는 다음날 이웃 친구 최씨를 찾아가 술 한잔을 샀다. 그리고 최씨집 전화선을 따 자신이 집에 연결해 사용했다. 이것이 쁘롯지다. 유선 방송선을 따 요금을 내지 않고 유선 방송을 보는 것으로 비유하면 맞다.
◇Y=BX(IF X=1957, B=해외→Y=스푸트니크, 뱅가드)
1957년 10월 4일 금요일 밤, 워싱턴 러시아(예소련) 대사관에서는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월요일부터 시작된 국제 지구 물리학의 해(IGY)를 기념한 「로켓과 인공 위성에 관한 학술 세미나」가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 과학자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냉전 시대 동·서 진영의 과학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쉽지 않은 때였다.
서방 진영 과학자들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러시아의 로켓기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보려고 저마다 러시아 과학자 옆에 붙었다. 그때 술에 취한 한 러시아 과학자가 『조만간 우리는 인공 위성을 발사할 것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조만간이 대체 얼마나 되나』라고 묻자 그는 『길어야 1주일』
이라고 답했다. 순식간에 장내는 웃음 바다가 됐다.
같은 시간 파티장에 있던 뉴욕타임즈의 월터 설리번 기자에게 신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타스통신으로부터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1호(세계 최초의 인공위성)」를 오늘 발사했다는 급보가 왔으니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설리번 기자가 사실 확인을 할 그 시간엔 이미 스푸트니크 1호가 파티장 상공을 2번 돌고 있을 때였다. 러시아가 미국의 위성 발사 계획인 「뱅가드」에 물을 먹인 것이다.
당시 스푸트니크1호는 후루시초프의 명령에 따라 아마추어 햄들이 라디오 신호를 수신할 수 있게끔 라디오 송신장치를 달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통신 위성이 하늘에 오른 셈이다.
◇Y=CX(IF X=2040, C=글로벌라이제이션→Y=?)
40년전 우리가 전화를 웃돈주고 사고 팔던 때 서방에서는 이미 위성을 쏘아올렸다. 4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위성과 전화를 연결한 차세대 통신(IMT-2000)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면 처음 품었던 질문인 40년 후의 통신은 어떤 모습일까를 풀어보자. 단순한 1차 함수에 2040년을 대입했더니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는 요즘, 40년은 예측하기에 너무나 긴 시간이다. 살아가면서 직접 체험해 보는 수 밖에.
/김창익기자WINDOW@SED.CO.KR
/컴퓨터그래픽=문현숙프리랜서입력시간 2000/08/04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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