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최철한이 흑75로 붙였을 때까지만 해도 검토실의 여론은 ‘잡힐 것 같다’가 대부분이었다. 도무지 두 눈을 낼 공간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오직 한 사람 서봉수9단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고수의 돌은 잘 죽지 않아. 최철한이 움직일 때는 살 구멍을 봐둔 경우지.” 과연 최철한은 깊은 수읽기를 마쳐놓고 있었다. 흑81로 기어나온 이 수가 천하묘수였다. 최철한이 흑81로 기어나왔을 때 검토진들은 그것이 윗쪽 흑대마의 사활과 연관된 수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참고도1의 흑1 이하 9(백4는 이음)로 아랫쪽 백 3점을 잡는 수단을 만드는 줄만 알았다. 사실 이 수단만 해도 상당히 유력한 것으로 15집 이상에 해당하는 큰끝내기였다. 하지만 최철한은 그 끝내기를 위해 흑81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그가 흑83으로 붙이자 검토진들은 비로소 천하묘수의 실체를 알아차렸다. 백이 참고도2의 1로 막으면 흑2 이하 8로 절묘하게 수가 난다는 사실. 이세돌도 그것을 읽고 선선히 84로 물러섰다. “과연 최철한이군요. 용케도 활로를 보고 있었네요.”(윤성현) 그런데 다음 순간. 최철한은 대마를 얼른 이어가지 않고 흑85로 붙였다. 지금까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두어오던 이세돌의 손길이 멎었다. 5분의 숙고 끝에 이세돌이 둔 곳은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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