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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이 흔들린다] (하) IMF 시대의 논리를 마감하자

`한국은 19세기 아프리카 원주민 수준`이라면 동의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적어도 금융에서는 그렇다. 금융시장의 부동자금이 500조원에 달하지만 소수의 외국인에 의해 쥐락펴락 당하는 게 현실이다. 1879년 영국군 수비대 120명이 아프리카 즐루족 전사 2만명을 물리친 `이산나와들 전투`처럼 덩치와 규모만 큰 한국은 조직과 시스템을 갖춘 한줌의 외국인에게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령은 정부 내에서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변양호 재정경제부 본부국장(전 금융정책국장)은 외국자본이 들어와 기업을 인수하고 합병해야 한국의 기업들도 체질이 강해진다는 `메기론`에 대해 “한국과 미국은 다르다”며 정면으로 공박한다. 미국에서는 M&A가 발생해도 자국내 자본이 대부분이고 설령 외자에 의한 기업인수나 합병이라도 미국시장이라는 거대시장에 용해되는 반면 한국에서는 국부 유출로 이어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외국자본에 대해 말을 아끼는 성향이 강한 경제관료가 외자에 의한 시장 잠식을 공개적으로 우려한다는 점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통계를 보자.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상장된 전체 주식의 시가총액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43%. 전세계 주요시장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의 18%에 비해 2.4배나 늘어났다. 단기간에 외국인 지분이 급증한 것도 유례가 없는 기록이다. 특히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모두 50%를 넘어 섰다. 외국인 지분율이 70%를 초과하는 기업도 허다하다. 겉만 토종기업이지 속은 외국인이 차지한 `바나나`기업은 더욱 늘어나게 돼 있다. 외국인의 주식매수세가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피`역할을 맡는 금융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경부에 따르면 2003년6월 기준으로 외국인의 상장금융기관 주식보유비중(시가총액 기준)은 은행 45.70%, 보험회사 40.66%, 카드회사 34.94%, 증권회사 12.73%에 달한다. 알짜배기에 대한 지분율은 더욱 높다. 공적자금투입은행과 지방은행을 제외한 우량은행 즉 국민, 신한금융, 하나은행의 경우 61.33%, 58.38%수준으로 올라간다. 한미은행까지 씨티은행이 인수함에 따라 우량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을 더 올라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 때문에 외국자본이 주요 산업과 금융을 좌지우지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외환위기 탓이다. 구제금융을 받아 외환을 채워넣어야 하는 위기가 `외자 유치=절대 선(善)`이라는 등식으로 이어지고 사고체계까지 굳혀놓고 말았다. 물론 외국자본이 기여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위기 극복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경제 전반에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소버린과 LG카드 사태는 외국자본이 국민경제에 어떻게 해악을 미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수 십년을 일궈온 거대기업이 순식간에 투기자본의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경제전반에 걸친 시스템의 위기가 일부 외국계 은행에 의해 증폭되는 사례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외국계 자본이 자기 목소리를 드높일 경우 시장 불안은 더욱 가중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안은 IMF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위기 직후 무장해제 상태에서 받아들였던 완전개방을 우리 실정에 맞게 수정 보완하자는 것이다. 마침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외국자본의 횡포를 막기 위해 단 한 주만으로도 주총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를 도입할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한 대목은 정부의 정책방향을 말해주고 있다. 주식사모펀드와 간접투자상품을 활성화하거나 무산됐지만 `이헌재 펀드`가 추진된 것도 정부와 민간에서 맹목적인 외자유치와 감시장치 없는 핫머니 유출입의 부작용을 극복하자는 합의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임준환 서강대 교수는 “남은 것은 얼마나 정교하고 실속 있게 대안을 짜느냐의 문제”라며 “산업 부문에 대한 장기직접투자를 적극 유치하면서도 핫머니에 맞설 수 있는 토종자본의 육성에서부터 주식시장과 연계된 환율 정책에 이르기까지 정밀하고 치밀한 중장기 대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정승량기자 s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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