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80억원. 영화는 예술이고,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영화 ‘태풍’이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들였으니 볼 거리가 많겠구나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문화계에서 가장 산업화가 진전된 영화판에서, 그것도 CJ라는 대기업의 돈을 100억원 넘게 받아 제작된 작품을 결코 ‘예술’로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위험을 헤지할, 지난 수 년간 검증된 모든 흥행 코드를 탑재하고 있다. 남북 분단, 민족주의, 무겁지 않은 반미 감정, 화려한 액션, 신파적 가족애, 초특급 흥행스타까지. 이 모든 걸 갖추고 영화는 출발한다. 영화는 분명 스케일을 자랑한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에서 ‘한국형’이라는 말을 빼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의 연기는 그들의 커리어 사상 최고를 보여줬다. 이글거리는 눈빛과 비열하기까지 한 미소로 관객을 쏘아붙이는 장동건은 그 중 압권이다. 헤어진 누나 이미연과 처음 상봉하는 장면에서 움찔대는 뒷모습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하는 이미연 역시 화려한 연기 세계를 마음껏 뽐냈다. 판은 펼쳐졌다. 벌써부터 몇몇 평론가와 기자들은 이 영화의 부족함을 꼬집는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마케팅비용만 40억원을 투입한 이 영화에 그런 평은 큰 의미가 없다. 이변이 없는 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테고 그들의 반응이 영화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180억원짜리 영화의 의미는 ‘작품의 완성도’보단 ‘대중의 카타르시스’에 있다. 허황되고 현실성 없는 설정은 그래서 용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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