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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꼬리가 개를 흔들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ㆍ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

오래전 ‘왝더독’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꼬리가 개를 흔든다’, 즉 ‘주객전도’의 의미를 가진 미국의 속담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였는데 별로 재미도 없고 구성이 탄탄하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은 그 줄거리 때문이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잇단 악재로 인해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대통령의 측근들이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자와 상의해 전쟁장면을 촬영한 후 진짜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가장해 뉴스에 내보낸다. 그것도 모자라 한 소녀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는 장면을 촬영해 뉴스에 내보낸 후 그 소녀가 구출돼 미국으로 오고 공항에 실제로 나타나는 시나리오를 꾸며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기까지 한다. 모든 것은 연출됐지만 비밀이 밝혀지기까지 사람들은 조작된 전쟁드라마에 열광한다. 개인의 목소리 도둑맞는 사회 황당하기까지 한 이 드라마가 주목받은 것은 그 당시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에 시달리던 빌 클링턴 미국 대통령이 중동에 폭격을 가한 일이 그보다 전에 나온 이 영화와 신기하게도 맥이 닿아 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자꾸만 가라앉고 있다. 상반기 성장률도 시원찮고 소비와 투자의욕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고유가와 원화가치 절상에다 고금리 현상까지 예상되면서 소위 ‘신3고’의 악재 속에 장기침체의 가능성마저 엿보이고 있다. 밤거리에 길게 늘어선 택시 행렬을 보면서 ‘큰일 났다, 계속 이러면 안되는데’라는 혼잣말이 저절로 나오는 요즘, 연초에 경제에 ‘올인’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공염불이 돼버리고 우리 정치권은 온통 X파일에 ‘올인’하고 있다. 불법으로 도청돼 제작된 테이프 하나의 내용 공개. 뒤이어 터진 도청팀 팀장의 자해사건. 그리고 발견되는 274개의 테이프. 공개냐 폐기냐, 특별법이냐 특검법이냐의 논란. 그리고 공개 자체가 불법인지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녹음된 내용을 가지고 시작되는 수사. 정교하다면 대단히 정교하고, 중구난방이라면 또 대단히 중구난방격인 이 드라마를 보며 문득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불법도청 테이프에 육성이 담긴 사람들의 인권은 국가가 짓밟아도 되는가. 네 목소리를 네가 도둑맞았으니 책임은 너에게 있다는 식의 논리가 과연 성립하는가. 혹시 이것이 전례가 돼 불법인지 여부에 상관없이 소위 잘나간다(?)는 사람을 두드리기만 하면 그 결과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가. 사과한다며 사과 한 상자를 보내는 그런 천박함이 모두에게 전염되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국가가 국민들의 인권을 선별적으로 보호한다면 그 국가나 정권은 신뢰를 얻기 힘들다. ‘여기 잘나가는 사람들의 은밀한 대화를 담은 테이프가 있는데 들어보지 않을래?’라는 질문에 ‘그러지 뭐’라고 답하지 않을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반드시 한 문장이 첨가돼야 한다. ‘그런데 네 목소리가 담겨 있을 수도 있어.’ 만일 뒤의 얘기까지 첨가돼 소위 여론조사라는 것이 이뤄진다면 대답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다음에 듣지 뭐.’ 깊어진 분노속 가라앉는 경제 언제 나의 목소리가 도둑맞을지 모르는 사회,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도둑맞고도 도둑맞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못한 사회이다. 국민의 목소리 하나 보호해주지 못하는데 다른 것은 오죽하겠는가. 당연히 폐기됐어야 할 테이프 안에 들어 있는 은밀한 대화내용을 가지고 벌어지는 한편의 드라마를 보면서 사람들은 마취되듯 어려운 경제가 주는 고통을 잊고 분노할 것이고 그리고 곧 허탈해질 것이다. 결말은 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 우리에게 남는 것은 더욱 식어버린 경제, 늘어난 실업자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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