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쓰러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12일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 폐렴 증세가 악화돼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한 달 만이다. 지난 2005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에도 수술 사실을 감추고 왕성히 활동해 온 시대의 거인.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앙드레 김은 폐렴으로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가을 무대에 올릴 패션쇼를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병마가 육신은 좀먹었지만 패션을 향한 그의 열정에는 범하지 못했다.
패션계에 투신한 앙드레 김의 50년 인생은 그의 빈소를 찾은 면면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우 원빈을 시작으로 이병헌 송승헌 권상우 소지섭 고현정 김혜수 김태희 최지우 등이 줄줄이 앙드레 김의 영정 앞에 눈물을 떨궜다. 한 연예 관계자는 “한국 연예계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 순간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 먼저 서게 된다. 그의 무대를 통해 톱스타 대열에 합류한 배우들이 모두 앙드레 김을 위한 마지막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15일 오전 진행된 발인식. 영정 속 앙드레 김은 언제나처럼 하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앙드레 김을 실은 관을 비롯해 운구차량까지 백색이었다. 패션계의 영웅은 그렇게 하얗게 스러졌다. 홀로 발인식에 참석한 권상우는 플래시 세례를 뒤로하고 영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인을 실은 운구차는 그가 30년 넘게 살았던 서울 압구정 자택과 신사동의 아뜰리에, 그리고 지난해 완공된 경기도 기흥의 앙드레 김 아뜰리에를 들른 후 천안공원묘원으로 이동했다.
하관식은 낮 12시 시작됐다. 하관식이 시작되자 눈물이 메말랐던 아들 김중도씨의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하관식에 참석한 배우 김희선 역시 검은 뿔테 안경 너머 붉게 충혈된 눈을 연신 손수건으로 닦아 냈다.
하관식이 끝나고 흙을 내리기 시작하자 이곳저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중도씨를 시작으로 100여 명이 한 삽 씩 흙을 내리며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했다. 생전 고인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김희선이 마지막 삽을 떴다. 지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무덤 앞으로 나온 김희선은 힘겹게 흙과 눈물을 함께 뿌렸다.
무덤의 양쪽에는 각각 앙드레 김의 영정사진과 금관문화훈장이 위치했다. 영정 속 환하게 웃는 고인은 마치 자신의 마지막길을 함께 한 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는 듯했다. 무덤가 한 켠에 놓인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국회의장이 보낸 조화도 눈에 띄었다.
하관식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유족들은 이틀 후인 17일 같은 장소에서 삼우제를 치른다.
스포츠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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