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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타왕 스토리] (1) 대한민국 장타왕 역사… 연덕춘에서 김대현까지


[서울경제 골프매거진] 한국을 대표하는 장타왕은 누구였을까? 그 과거를 추억해본다. 지난달 남서울CC에서 열린 매경오픈 주간의 일요일, 티잉그라운드에 가장 늦게 올라선 3명은 배상문, 오태근, 김대현이었다. 이 중 배상문과 김대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장타자의 계보를 잇는 이들이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드라이브 평균거리'라는 명목으로 장타왕을 처음으로 시상한 것은 2006년부터다. 드라이버샷의 거리를 기록으로 측정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도 2007년부터 장타와 관련된 기록을 집계는 하지만 공식기록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전의 장타자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기록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연덕춘으로 시작하는 장타자 계보 한국 최초의 장타자는 한국인 프로골퍼 1호인 연덕춘에서 시작한다. 한국프로골프협회 창립회원인 문기수는 "연덕춘의 티샷이 다른 이들보다 10~20야드 정도 더 멀리 날아갔다"고 회상했다. 그럼 연덕춘의 뒤를 잇는 장타자는 누굴까? 여기서 한국 장타자의 계보가 이어진다. 최영정 골프칼럼니스트는 "연덕춘의 뒤를 이어 김덕주가 가장 멀리 나갔다"고 기억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국내투어의 최고 장타자였던 김덕주는 77년 홍콩 로열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아시아서키트 마지막날 선두와 격차가 조금 벌어지자 15번홀에서 해저드를 훌쩍 넘겨 그린 근처까지 볼을 날렸다. 해저드 앞까지 거리가 265야드였고 볼이 떨어진 곳은 350야드 지점이었다. 이것이 김덕주가 기억하는 최고의 장타다. 김덕주는 "14번홀에서 4퍼트를 하는 바람에 우승권에서 멀어져 오기로 샷을 했다. 당시 홍콩에 있던 교민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응원을 했는데 3위에 그쳐 상당히 아쉬웠다"며 "그 대회에서 장타 때문에 유명세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장타자를 꼽으라면 국내외 9승을 거두며 아시아스타로 자리매김했던 김승학이었다. 이제 과거의 일이라며 인터뷰는 사양했지만 그를 빼놓고는 장타를 논할 수 없다. 그는 178cm의 좋은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샷거리로 필드 위에 군림했다. 현역 시절, 장타와 정교함을 동시에 가져야 기록할 수 있는 알바트로스도 2, 3회 기록할 정도였다. 최영정 씨는 "김승학은 파5인 한양컨트리클럽 10번홀에서 드라이버와 스푼(3번 우드)으로 2온에 성공할 정도로 롱히터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장타자의 바통을 이어 받은 이는 1986년 KPGA 투어에 데뷔한 김석노였다. 그는 당시 열린 매경오픈 때 롱기스트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임진한은 "투어에서 거리는 김석노가 최고였다. 다른 이들에게선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샷을 볼 때면 거리가 정말 멀리 간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하느라 비록 국내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지는 않았지만 아마추어 최고의 거리를 뽐냈던 김동건 아나운서의 아들 김주형도 빼놓을 수 없다. 한장상은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요즘 한국에서 볼을 가장 멀리 보내는 배상문보다 20야드는 더 나갔다. 나는 주형이보다 더 멀리 볼을 날리는 한국 골퍼를 보지 못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방한한 '샷거리의 황제' 존 댈리보다 볼을 더 멀리 날려보낼 정도였다. 이제 한국의 장타자는 30년의 세월을 지나 2000년대로 넘어와 투어에서 장타대회가 열리면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최경주, 양용은에 이른다. 딱히 설명이 필요 없는 이들이다. 그리고 2006년 투어 공인 장타왕이 등장한다. 초대 장타왕은 2006년 평균 291야드를 기록한 배상문이다. 이후 김대현이 2년 연속으로 장타왕에 올랐다. 장타와 함께한 클럽, 드라이버 최영정 씨는 과거의 장타자들을 회상하며 "그때의 장타와 300야드가 넘는 요즘의 장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라며 "구형 따발총과 최신식 기관총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따발총과 기관총의 차이는 20야드다. 다음은 박종현 엘로드 부장의 말이다. "지금이야 남서울의 파5 홀에서 대부분 2온을 노리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2온을 성공시키는 골퍼들이 드물었다." 체형의 변화도 있겠지만 클럽과 볼 등 용품의 기술이 발달한 덕택이다. 20년 전 사용되던 드라이버는 이제는 박물관이나 중고숍의 인테리어용으로나 볼 수 있는 퍼시몬(감나무) 드라이버였다. 같은 감나무라고 해도 거리에서 차이가 났다. 일본에서 구입하거나 미8군의 지인에게 부탁해 얻은 질 좋은 드라이버도 장타를 날리는 비결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카본 소재를 지나 90년대 초반에 메탈 소재의 드라이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김덕주는 80년대 초중반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오면서 가져온 1번과 3번 메탈 우드가 국내 최초의 메탈 우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메탈의 소재로는 주로 스테인리스가 사용되었는데 헤드체적은 180cc에 불과했다. 하지만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티타늄 드라이버가 나오면서 헤드가 점차 커졌고 샤프트의 길이도 길어졌다. 이는 헤드스피드의 증가를 가져왔고 페이스의 반발력도 커져 샷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드라이버만 샷거리의 증가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볼의 변화도 샷거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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