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세습이요? 채용의 공정성을 해쳐 일반 입사지원자들의 의욕을 꺾는 거 아닙니까.” 대기업 퇴직노조원 자녀의 우선 채용, 이른바 ‘고용세습’에 대해 서울의 한 사립대 졸업반인 C모군(28)은 최근 일부 기업 노조가 ‘명예퇴직하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자녀들의 우선 취업을 요구하는 방안’을 노사협상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소식에 발끈했다. 지방 출신인 C군은 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 학비에다 생활비까지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다. 졸업을 앞두고 번듯한 직장을 잡아 그동안 부모님 노고에 보답하고 싶지만 취업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대기업 입사를 겨냥해 10여 곳에 원서를 냈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취업도 대물림하게 해달라” =한국의 대기업 노동조합 이기주의가 넘어서는 안될 선들을 잇달아 넘고있다. 가장 대표적인 노조 이기주의가 ‘고용세습 명문화’. 취업장사를 하다 검찰에 적발된 모 완성차 노조는 무소불위의 힘을 앞세워 채용을 좌지우지하며 노조원 자녀는 물론 친인척의 취업 특권을 남몰래 보장해온 사실이 수사결과 드러났다. 사실 고용의 대물림은 노조의 힘이 막강하거나, 내부 비리가 많은 기업을 중심으로 그동안 암암리에 이어져왔다. 하지만 최근엔 일부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이 같은 ‘대물림 취업권’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미 일부 대기업 노조는 고용세습을 단체협약 조항으로 못박거나 단체협약 대상에 포함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임금과 직업안정성을 자랑하는 모 정유사 노조는 이미 업무상 재해를 당하면 ‘자녀들이 입사를 지원할 때 편의’를 보장받고 있다. 이 회사 노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임직원이 업무외 시간에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자녀의 입사우선권을 달라며 ‘파업불사’를 외쳤다. 이에 앞서 또다른 대기업 노조는 노사 단체협약 협상에서 공장 근로자가 중도 퇴직할 경우에도 퇴직 근로자 자녀를 우선 채용해달라고 요구, 관철시켰다. 1년전 대학을 졸업한뒤 대학원에 적을 두고 꾸준히 대기업 문을 두드리고 있는 K모군(28)은 이와 관련, “아버지가 그 회사에 다녔다고 해서 아들이 더 나은 생산성이나 기술을 갖춘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귀족 노조들의 이권 챙기기가 극에 달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고용세습은 반노동시장적인 발상”이라며 “생산성과 노동력이 연동이 돼야 노동시장의 효율성이 확보되는데 고용세습은 이 기능을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박성준 박사도 “고용세습 때문에 능력이 안되는 사람을 쓴다는 것은 기업입장에서 생산성 저하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주차장 멀다”공장건설 반대=지난 7월 국내의 한 완성차업체의 일부 노조 대의원들이 주야 2시간씩 4시간 파업을 벌였다. 파업이유는 “주차장이 멀어 출근시간이 길어지는 불편을 감수할 수 없다”는 것. 이 회사는 당시 기존 공장과 근처 주차장(3,000여평 규모)을 묶어 신차종 라인을 들여놓으려고 했다. 이 계획에 투입되는 자금만 3,000억원. 회사의 생존경쟁력과도 직결돼 있으며, 국가적으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업들의 투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었다. 상당기간의 실랑이가 이어져 신차종 생산라인 구축 계획 자체가 무산될 뻔하기도 했지만 결국 노사 합의로 어렵사리 신공장 건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신차 생산 일정은 당초 계획보다 세달 이상 늦춰질 수 밖에 없었다. 대기업 노조의 극단적 이기주의 사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지난 여름 울산의 일부 식당이나 상점을 이용하지 말라며 ‘소비파업’을 벌여 주변의 눈총을 샀다. 지역 시민들이 파업 때문에 영업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며 노조에 파업 자제를 요청하자 아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명분을 뒷전으로 미룬 채 오히려 지역주민에게 피해를 입히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이 같은 소비파업은 주민들의 반발로 슬그머니 접긴 했지만 국내 노동운동의 잘못된 행태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대순 전국경제인연합회 노동복지팀장은 “노조는 임금과 근로조건에 대해 정당하게 요구하면 된다”며 “노조가 힘을 앞세워 공장 증설과 같은 경영권에 관한 부분을 요구하는 것은 월권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대기업 노조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 노조원들의 고용 안정과 고임금 보전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현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임금은 수배 차이가 난다. 현대차의 경우 현재 하청노동자가 1만3,000명을 넘는다. 이는 5년전에 비해 3배나 늘어난 수준이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노동계가 최근 비정규직 법안 통과를 이유로 총파업을 벌이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스스로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난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구조조정의 충격을 입은 현대차 노조는 2000년 사내하청 투입을 16.9%까지 합법적으로 보장해주는 내용의 ‘완전고용보장합의서’를 체결했다. 이후 비정규직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만약 정규직인 조합원의 몫을 덜어서 신규 채용을 늘리고 임금피크제 등과 같은 일자리 나누기 노력을 했다면 이처럼 짧은 기간에 비정규직이 급증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노총은 올들어 ‘노노갈등’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원을 대상으로 1만원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현재까지 20억원도 채 안된다. 특히 대기업 노조일수록 소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동계 내부에서조차 “대기업 노조원들이 ‘먹고 살 만한’ 선택받은 계급이 됐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동응 경총 전무는 “국민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노조가 변해야 한다”며 노동운동이 상식을 갖고 합리적이고 더불어 나누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활동 점수 매긴다면 10명중 8명 "C학점이하"
본지·커리어, 대학생 513명 설문…"F학점 주겠다"도 28.7%나
33%는 "노조가 취업 장애" "파업 반드시 동참" 11%뿐 "노동운동이 국가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진보성향 그룹으로 꼽히는 대학생들조차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C학점 이하의 낮은 학점을 줬다. 또 세명중 한명의 대학생들은 노동조합이 취업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 음성적 또는 제도화된 고용세습 등에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와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지난달 21일부터 4일간 대학생 513명 대상)에서 '현재의 노조활동에 학점을 매긴다면 어떻게 주겠느냐'는 물음에 10명중 8명 이상(84.5%)의 대학생들은 C~F라고 답했다. 특히 28.7%는 낙제점인 F학점을 주겠다고 말해 대학생 집단의 상당수가 현재 한국 노동운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음으로 C학점은 34.7%, D학점은 21.1%였다. 이와 함께 대학생 두명 중 한명 이상(53.8%)은 '노동조합의 활동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소(33.3%) 또는 매우(20.5%) 부정적"이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는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서 응답자의 44.6%가 "잦은 파업으로 인한 생산활동 차질"을 꼽아 한국 노동운동의 고질적인 병폐인 경제활동 훼손 문제를 우선적으로 지적했다. 이어 29.3%는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11.2%는 "정규직 과보호로 비정규직 증가"를 꼽아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소수의견으로는 "고용유연성 악화(9.1%)"와 "근로의욕 상실(3.3%)"을 꼽았다. 이번 조사에서 대학생 중 36.7%는 '기존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우선시하는 노동조합의 존재가 취업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소(24.2%) 또는 매우(12.5%)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대학생들의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취업 후 노조활동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취업에 성공한뒤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느냐'에 56.7%는 "노조성향을 따져본 뒤 가입한다"고 답했으며, 24.4%는 아예 "(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응답해 기존 노동조합 활동에 비판적이거나 반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노조에 가입하겠다는 대학생들만을 대상으로 '노조에 가입한뒤 파업이 벌어지면 동참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10.9%만이 "반드시 동참한다"고 반응했을뿐 89.1%의 응답자는 "일자리가 걸린 파업에만 동참하겠다(40.8%)", "정치목적 파업이 아니라면 동참한다(31.6%)", "절대 동참하지 않겠다(16.7%)"고 답했다. 즉 순수한 목적의 노동조합 활동, 즉 근로조건 향상과 고용안정 등 경제적인 이유의 파업에만 참여하겠다는 것이어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정치파업 사태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각 부문의 민주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대학생 사회가 더 이상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여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지 않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대기업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 폐해를 매년 지켜보면서 (대학생들이) 연대의식은 커녕 노조활동이 경제활동과 취업을 어렵게 한다는 대립적 시각을 갖기 시작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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