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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로 악화된 재정 메워라"… 중동 국부펀드 자금 대거회수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겹쳐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원유감산 합의 실패로 국제유가 40달러선이 무너진 가운데 저유가로 타격을 받은 중동의 국부펀드들이 올해 자산운용사에서 빠른 속도로 거액의 투자금을 회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셰일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치킨게임 과정에서 유가하락으로 악화된 재정을 메우기 위해 자금 회수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6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이베스트먼트 조사 결과 올해 3·4분기 중동 국부펀드들이 자산운용사로부터 회수한 자금은 최소 190억달러(약 22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국부펀드에서 단 3개월 만에 이처럼 많은 자금이 빠져나간 것은 처음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 펀드운용사인 블랙록이 펀드에서 빠져나간 금액을 밝히지 않고 있어 실제 이들 국부펀드의 총 유출액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2·4∼3·4분기 사이에 블랙록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31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한 모건스탠리는 같은 기간 미국 은행인 스테이트스트리트와 JP모건, 골드만삭스 등의 자산운용 사업부에서 국부펀드가 자금을 회수했고 미국 운용사 인베스코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갔다고 덧붙였다. 자산 규모 기준 유럽 3위 운용사인 애버딘의 경우 올해 3·4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자금 순유출이 발생했다.

국부펀드의 자금 이탈이 일어나는 이유는 지속된 저유가로 산유국의 재정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지난해 6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국제유가는 현재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친 상태다. 마틴 길버트 애버딘 최고경영자(CEO)는 "유가가 현 상태를 지속하면 국부펀드의 자금 회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세계 5대 국부펀드 중 4곳이 산유국인 만큼 이들의 움직임이 자산운용사들에 미치는 여파는 크다. 운용 자산 규모가 6,720억달러로 세계 4위 국부펀드인 사우디아라비아금융청(SAMA)은 올 들어 약 700억달러(약 81조7,000억원)의 자금을 외부 운용사에서 회수했다고 FT는 전했다. 모건스탠리는 국부펀드들의 자금 회수 속도가 올해 말까지 현 수준을 이어간다면 자산운용사들의 올해 수익률은 약 4.1%가량 급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이클 마두엘 국부펀드협회(SWFI) 회장은 "중동 국부펀드들의 자금 회수는 펀드업계에 매우 큰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도 국부펀드들의 자금 회수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컨설팅업체 크리에이트리서치의 아민 라잔 CEO는 "국부펀드들이 지난 8월 중국 증시가 폭락한 '블랙먼데이' 사태로 급변한 투자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많은 국부펀드들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도래하면 상황이 다시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저유가에 올해 산유국들의 주식시장도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 등의 증시는 13~15%가량 하락했다. 원유 관련 수입이 재정의 80%를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밑돌면서 재정이 크게 악화된 상태로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보고서에서 저유가 상황이 계속된다면 사우디 정부의 재정이 5년 안에 바닥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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