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과 고수익을 동시에 좇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올 상반기 큰 인기를 끌었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들 중 최근 52주 신저가로 추락하는 종목들이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저성장 속에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인수합병(M&A)을 비롯한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스팩의 인기가 빠르게 식고 있다는 분석이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최근 1년 내 가장 낮은 가격을 기록했던 코스닥 36개 종목 가운데 스팩이 절반에 가까운 17개를 기록했다.
전날에도 교보3호스팩과 미래에셋제3호스팩, 엔에이치스팩7호, 키움스팩3호 등 19개 스팩이 52주 신저가를 경신하며 코스닥 신저가 종목(42개)의 45.23%를 차지했다. 지난 16일에는 무려 23개의 스팩이 무더기로 신저가 종목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돼 거래 중인 스팩 62개(합병 상장을 위해 매매거래가 정지된 종목 제외)의 40%에 가까운 규모다.
스팩은 비상장 우량기업을 인수합병(M&A)하기 위해 설립된 서류상 회사로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상장한 뒤 비상장 기업을 3년 안에 합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합병 실패로 스팩이 해산되더라도 투자자의 원금과 이자가 보장되기 때문에 일반 주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동시에 M&A 기대감에 따른 추가 수익을 노릴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2013년 단 2개에 불과했던 신규상장 스팩 건수는 지난해 26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올해는 벌써 40건을 넘어섰다.
최근 스팩 주가가 고전하는 것은 스팩시장의 활성화 요건인 미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류용석 현대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화장품·바이오 등 그동안 성장주로 평가받던 업종들의 내년 전망치까지 하향 조정되는 등 마땅한 성장산업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스팩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기업 구조조정 가속화로 M&A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스팩 합병이 미뤄지고 있는 것도 스팩 인기 하락의 또 다른 원인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시장 상황이 좀 더 나아질 때까지 스팩 합병을 미루려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면서 스팩 주가의 최대 호재인 M&A에 대한 기대감도 가라앉고 있다"고 설명했다.
합병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도 하락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올 들어 스팩과 합병해 상장한 기업 10곳 가운데 합병 상장일 이후 이날 종가 기준으로 주가가 오른 곳은 단 1곳에 불과하다. 9월 엔에이치스팩2호와 합병 상장한 바디텍메드의 경우 합병 상장 이후 주가가 반 토막 났다.
/김현상기자 kim01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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