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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상> '일 중심 사회'의 초상

시간 나도 안나도 일단 잠부터 자거나 TV시청… "쉬는게 여가활동"



# 재작년 2월, 대학 졸업과 함께 대기업 취업에 성공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직장인 서현영(26·여)씨. 일자리만 얻으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서씨는 요즘 취직하기 전보다 더 큰 불만과 고민에 빠졌다. 도무지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생활과 업무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던 지난 1년10개월간 그의 평일 동선은 직장과 집으로 한정됐고 심지어 주말에도 평일 정규 업무 시간에 다 못 끝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출근하는 경우가 잦았다. 학창시절에는 그래도 공부하는 틈틈이 헬스클럽을 다니는 등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요즘에는 일하는 것만으로도 파김치가 돼 퇴근 즉시 드러눕는 게 일상이다. 서씨는 "요즘 내 유일한 낙은 가끔 친구들을 만나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다시 보는 일뿐"이라며 "사치스럽게 들리겠지만 이렇게 일만 하려고 취직한 것은 아니었기에 회사를 그만둘까도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 요즘 김영숙(62·여)씨는 한마디로 말해 흘러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온종일 TV만 본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약 1년 전까지는 음식점을 경영했었지만 장사가 잘 안 되던 차에 자식들이 모두 취업에 성공해 더는 돈을 벌 필요가 없겠다 싶어 과감히 일을 접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일을 그만둔 직후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타지의 친구들도 만나고 평생 엄두도 못 냈던 해외여행도 가는 등 여러 활동에 분주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큰둥해졌다. "말마따나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놀 줄도 모르더라"며 씁쓸하게 웃는 김씨는 "요즘 다시 작은 분식집이라도 해보려고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여가는 텔레비전으로 시작해 텔레비전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쉴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도, 시간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도 일단 TV부터 켠다. 실제 TV 시청은 정부가 우리 국민의 여가활동에 대해 발표한 첫 공식 자료인 '2006년 여가백서'에서 가장 많이 하는 여가활동(68.3%)으로 선정된 후 10년간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6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리서치와 함께 전국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2명을 e메일 온라인 설문 조사해 얻어낸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응답자의 62.6%는 여가에 가장 먼저 하는 활동으로 수면과 TV 시청 등 휴식을 꼽았다. 독서나 등산 등의 취미를 우선해 즐긴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8.6%에 그쳤고 음주가무 등 즐거움을 위한 오락활동을 하겠다는 사람도 8.2% 수준이다. 1순위 응답과 2순위 응답을 합쳐야 취미나 오락을 통해 기분전환과 재충전을 하겠다는 응답자 수가 겨우 26.7%, 31.8%까지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일 중심 사회의 초상"이라고 말한다. 20~30대는 과중한 업무에 얽매여 충분한 여가가 없고 50~60대는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아 어떻게 노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실제 한국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2,285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2013년 조사 결과인 2,163시간보다 오히려 늘어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OECD 평균인 1,770시간보다 29%(515시간) 많이 일하고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66%(914시간) 더 근로한다.



2004년 주5일제 실시 이후 정규 근로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여유를 체감한다는 국민은 드물다. 국민여가활동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평일 3.1시간이었던 여가는 2010년 4시간까지 늘어나는 듯했지만 2014년 다시 3.6시간으로 줄었다. 휴일 여가 또한 2006년 5.5시간에서 2010년 7시간으로 늘었다가 2014년 5.8시간으로 줄어들었다.

시간 부족과 더불어 취미활동을 즐길 정도로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취미 없는 나라'가 된 이유로 지적된다. 2014년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GDP)은 2만8,000달러 수준으로 여가 선진국으로 꼽히는 노르웨이(8만749달러), 네덜란드(4만4,249달러), 독일(4만1,955달러) 등과 비교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번 조사 결과 현재 취미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의 절반 이상(51.1%)이 '취미를 가지려 노력하지도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경제적 부담이 크다(34.0%)'는 사람과 '바빠서(23.3%)'라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무취미자의 절반 가까이가 '취미를 찾고 있지만 유무형의 사회 인프라 때문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해 정부의 사회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취미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 됐다'고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흥미로운 활동을 만나지 못했다(14.2%)' '가까운 곳에서 즐길 활동이 없었다(7.9%)'고 답했다.

당국이나 지자체 등에서 흥미로운 취미 프로그램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나 기회를 제공한다면 취미활동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취미를 가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사람의 적지 않은 수(12.1%)가 뭘 해야 할지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답했다는 것 또한 취미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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