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부품 사업에 뛰어들겠다고 밝힌 지난 9일 현대자동차는 자회사인 현대오토론을 통해 자율주행차의 반도체 칩을 직접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1·2위 기업이 전기자동차와 스마트카 시장에 주력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과거에는 완전히 다른 사업으로 여겨졌던 전자와 자동차가 한 분야에서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었다.
'뉴 컨버전스(New Convergence)', 신융합시대가 열리고 있다.
1990~2000년대 듀폰과 바이엘, 바스프, 다우케미컬 같은 글로벌 화학사들이 화학기술을 바이오와 헬스케어에 접목시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했다면 최근에는 전자와 자동차, 가전 같은 제조업의 영역파괴 물결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여기에 통신과 인터넷, 각종 소프트웨어(SW)와 합쳐져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집'은 산업 융합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의 선택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미 구글과 애플, 샤오미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신융합시대를 맞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기업에 뒤처졌던 히타치 같은 일본 기업들도 엔저에 따른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영역을 파괴한 사업진출에 나섰다.
실제 삼성과 LG만 해도 전기차만 놓고 보면 자동차 차체와 타이어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을 만들 수 있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각종 센서, 반도체 등을 두 회사가 제작하기 때문이다. BMW는 삼성의 '갤럭시S'를 통해 차를 부르고 무인주차를 하는 서비스를 선보였고 삼성SDI와 협력을 더 강화하고 있다. LG는 전장부품에서는 삼성보다 한발 앞섰고 제너럴모터스(GM)와 메르세데스벤츠의 파트너가 되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스마트카는) 전장부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텔레매틱스 기술, 전기차 부품 등 사실상 전자회사가 기존의 기술을 활용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정보기술(IT) 업체의 자동차 업종 진격은 이미 글로벌 이슈다. 인터넷 검색업체 구글은 2017년에 무인 자율주행 전기차를 선보일 예정이고 스마트폰에서 삼성과 경쟁하고 있는 애플은 '타이탄 프로젝트'를 가동해 전기차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애플이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를 인수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이 경우 IT 회사가 자동차 업체를 사들여 하이브리드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중국의 가전업체 샤오미도 스마트카 관련 사업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자동차 업계도 IT 회사와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경우 "IT 회사의 하청업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자동차 전장부품 사용 비율은 현재 약 30% 수준이지만 2030년에는 50%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반도체 칩 설계를 직접 하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고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향후 전장부품 기업의 인수합병(M&A)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스마트카 관련 시장의 성장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 2,100억달러 수준인 스마트카 관련 시장은 2018년까지 매년 평균 6.7% 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운영체제(OS) 개발 확대와 사물인터넷(IoT)은 분야별 영역파괴의 흐름을 더 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와 집안의 전력 시스템을 연결하고 IoT를 이용해 차량을 조작 제어하고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만큼 과거처럼 특정한 분야의 제품만을 만들 이유는 갈수록 줄어들고 서로의 영역으로 파고드는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분야 간, 기업 간의 벽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있는데 통신사인 LG유플러스는 삼성전자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되는 TV와 로봇청소기 같은 가전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은 일단 자동차 부품으로 시작하겠지만 향후 구글이나 애플처럼 스마트카 OS나 서비스로 영역을 확대할지가 관심사"라며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향후 스마트카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지수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선두 제조업체들이 보유한 핵심 기술을 활용, 새로운 영역에서 기술융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는 자동차 등에서 새로운 산업융합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혜진·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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