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쇼크'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강타했다. '슈퍼 마리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투자가들이 고대하던 추가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했지만 '대형 바주카포' 대신 '장난감 물총'을 들고 나왔다는 비관론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시장 평가에 달러화 가치, 주요국 주가와 국채 가격이 급락한 반면 유로화 가치는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일대 충격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시장 요동= ECB는 3일(현지시간) 예금금리를 -0.3%로 0.1%포인트 인하하고 기준금리와 한계대출 금리는 각각 현행 0.05%, 0.30%를 유지하기로 했다. 매달 600억유로 규모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은 2017년 3월까지 6개월 더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 등 ECB 내 비둘기파들이 지난달부터 강력한 경기부양 조치를 시사한 것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주류다. 시장은 ECB가 자산매입 규모를 100억~200억유로가량 더 늘리고 예금금리는 0.2~0.4%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대감에 차 있던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이날 유럽의 대표 주가지수인 스톡스 유럽600지수는 3.1% 폭락하며 8월24일 이후 하루 낙폭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뉴욕증시의 3대 지수 역시 1%대 중반의 급락세를 보였다. 국채 가격도 급락했다. 이날 독일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67%로 0.2%포인트나 상승했다. 미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15%포인트 급등한 2.328%로, 2년5개월 만에 하루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4일 아시아 증시도 코스피지수가 0.99% 하락한 것을 비롯해 일본 닛케이225지수(-2.2%) 등 대다수 증시가 급락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전망에 지속되던 달러 강세 행진에는 제동이 걸렸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국 통화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2.06%나 급락했다. 유로화 가치는 달러 대비 3%나 급등했다. 이 때문에 '1유로=1달러'를 뜻하는 패리티가 연내 발생할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다. 당장 골드만삭스는 유로화 가치가 올해 안에 달러화와 같아지고 2007년에는 0.8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ECB, 추가 카드 남겨뒀나=물론 시장 일각은 "이번 조치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면서도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이 살아 있다고 보고 있다. ECB가 연준 금리인상에 따른 혼란이나 경기침체 때를 대비해 '실탄'을 아끼고 있다는 것이다.
홀거 잔터 노르디아마켓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앞으로 예금금리 추가 인하라는 가장 쉬운 방법을 비롯해 자산매입 규모 증가라는 '빅 스텝'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드라기 총재 역시 "이번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플레이션 안정 등에 충분한 조치"라면서도 "필요하다면 다른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ECB의 역학구도를 감안하면 드라기 총재가 바라는 대로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를 실시하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크다. 가디언은 "부양책이 기대치를 밑도는 이유가 수개월 전보다 유로존 경제 전망이 개선돼서가 아니라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 등 (매파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유로존의 3ㆍ4분기 성장률은 0.3% 증가하며 2ㆍ4분기의 0.4% 증가를 밑돌았다. 이날 ECB는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치도 0.1%로 하향 조정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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