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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49> 네 것, 내 것





한국인의 정서 속에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관념이 짙게 스며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남이가’라는 생각이다. 나와 남이 다를 수 없다는 발상은 이익을 따지지 않고 서로 도와주고 함께하는 ‘의리’(義理)의 문화로도 연결되고, 주군과 가신 사이에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하는 정치적 연대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서도, ‘너무 다른 요소’도 발견하게 마련이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 철학과 가치를 함께할 수 있다고 여겼던 인물이 의외의 행보를 보이게 되면 그에게 ‘급실망’하게 되고, 나중에는 관계 자체를 단념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남들이 보기에 그 결별의 주인공은 ‘너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너무 같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참 우스운 현실이다.

서구인들은 한국인과 인간관계를 조금 다른 각도로 보고 있는 듯 하다. 그들은 언제나 ‘기회’와 ‘위험’을 이야기한다. 자신과 타인은 네트워크라는 매개로 연결되어 있지만, 항상 그 안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음을 전제한 논리가 많다. 경제학은 기회주의적인 인간을 어떻게 하면 통제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온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때로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아 가며 자신의 지대(rent)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이런 저런 계약 조건을 걸어 도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자타불이’ 정신은 개개인의 품성이 불변하며 인간의 상호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임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서양인의 계약 관념은 인간은 항상 중간 정도, 언제나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하겠다. 일단 너와 나는 다르기에 언제나 다양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한국식 자타불이와 서양식 계약 관념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일도양단하긴 어렵다. 다만 애초에 서로가 다름을 확인할 때, 오히려 실망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경우도 적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나와 똑 같은 도덕관념, 비슷한 취향을 갖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내 줄 거라고 보는 기대가 만일의 상황에서 ‘깨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각각의 이슈에 대해 비슷한 행동을 하도록 드러내 놓고 약속을 하는 게 안전한 건 아닐까? 다소 팍팍하겠지만. 우리 사회에 납득 못할 이해다툼이 하도 많다 보니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본다.

얼마 전 어느 학생 비영리단체들의 각축장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SNS상에서 있었던 논쟁이다. 청소년들의 특별활동과 관련된 한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 구성원 중 일부가 뜻을 달리해 다른 조직을 만들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탈자’들이 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 배웠던 각종 노하우와 콘텐츠를 활용해 거의 유사한 서비스를 시작한 것. 이미 몇 회 프로그램을 실시해 본 경험이 있는 기성 단체의 리더는 ‘왜 내 것을 베꼈냐’며 여론을 조성하고, 신생 단체의 리더는 ‘그때는 우리가 하나 아니었나’라며 상대방이 지닌 지분의 독자성을 부인하고 나섰다. 한때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같은 생각을 공유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그 생각이 서로 ‘내 것’이라며 다투고 있었다.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아이들에게 ‘동질성’은 허락되지 않았다. 경계가 불분명한 소유권은 독점을 둘러싼 갈등의 쟁점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함께할 수도 있지만, 따로 떨어질 수도 있는 자율성을 가진 존재다. 이제부터라도 ‘너’와 ‘나’를 구분하는 것이 공존과 상생을 위한 길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김나영기자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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