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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가 알던 효녀 심청은 잊어라… 그저 죽음으로 '항의'했던 것일뿐…

충효·권선징악·형제간 우애 등 일반적인 고전 해석서 벗어나

색다른 시각으로 심청전 등 재해석… 기존 주인공과 비교하는 재미 더해

■ 파격의 고전 (이진경 지음, 글항아리 펴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한국 어린이들에게도 익숙한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빨간 모자' 등 그림 형제 동화의 본래 텍스트는 성인용이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없던 시절, 이런 어른들이 읽는 민화는 아동용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미화됐고, 권선징악 윤리 교과서쯤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유행한 동화 다시 읽기는 아름답고 윤리적이기만 했던 이들 동화에 대해 성, 부모자식간 권력 관계 등 다양한 해석을 끌어내고 있다.

시야를 한국으로 돌려보자. '철학과 굴뚝 청소부' 등 수많은 철학 서적을 펴낸 저자 이진경이 이번에는 '파격의 고전'을 통해 우리 고전에 대한 해석의 틀을 과감하게 부쉈다. 효나 충, 권선징악이라는 기존 해석의 틀에서 멀리 벗어나 차별적인 독해를 시도한 것이다.

'환관의 아내'와 '변강쇠전'에 대한 저자의 독해를 보자. '환관의 아내'에서 주인공은 양갓집 규수였으나 조실부모해 외숙모와 함께 살다가 환관에게 시집을 간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 날 밤에 담을 넘어 집을 나서고 무조건 처음 만난 중과 결혼하자는 결심을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주인공은 사랑 때문이 아닌 성욕 때문에 담을 넘은 것이라고 봤다. 사랑은 내게 다가온 누군가로 인해 담을 넘게 하지만, 성욕은 아직 누가 오지 않았는데도 담을 넘게 하기 때문이다. 성욕은 사랑과 달리 대상이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또 '변강쇠전'은 옹녀와 변강쇠의 성욕을 익살스럽게 긍정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같이 자기만 하면 남자를 죽게 하는 옹녀로 상징되는 여성의 성욕에 처음부터 '청상살'이라는 저주를 씌워놓았다 게 저자의 생각이다.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심청전'에 대한 비틀어보기도 흥미롭다. 장님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는 심청. 심청전은 어쩌면 절대적인 명령(효)에 순종하는 심청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그 명령의 지고함이 아닌 황당함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텍스트다. 자식을 야단치거나 "나가 죽어라!"라고 했는데 그 놈이 정말 나가 죽는 이런 경우의 절대복종은 항의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불사하는 극단의 항의,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그 명령의 부당성을 드러내는 항의라는 설명이다.



우리 고전 중 가장 혁명적인 소설 '홍길동전' 역시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사회의 시스템을 개혁하기보다는 개인의 욕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홍길동은 서얼로 태어나 당시 사회 질서에 불만을 품고 활빈당 활동을 통해 율도국을 세우는 데까지는 혁명적이다. 그러나 홍길동은 '호형호부'할 수 있는 지위를 원하지 자신의 처지가 부당함을 호소하지 않는다. 부당하다고 느꼈다면 병조판서가 됐을 때 신분제를 철폐했어야 했다는 것. 여기에 더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도 기존 질서를 벗어나지 못하는 홍길동은 그저 왕이 되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던 것이지, 신분제로 고통 받는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목표나 의지는 없었다. 그저 '호형호부'할 수 없는 한을 가진 인물에 멈춰 있을 뿐이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멀찍이 떨어져서 낯설게 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두렵고 거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세계와 마주보는 작업은 나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진일보하는 한 걸음이거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철학의 목적이기도 한데 저자는 고전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의 격을 부수는 철학적 작업을 한 것이다. 2만2,000원.

/연승기자 yeonv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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