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시합에서 알파고가 5번 중 4번을 이기면서 투자시장에도 곧 인공지능이 지배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커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바둑과 투자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바둑은 경우의 수를 충분히 검토한 뒤 최선의 한 수를 둔다. 바둑 실력이 낮을수록 검토하는 경우의 수가 적다. 하수가 검토하는 경우의 수는 고수가 검토하는 경우의 수의 일부(부분집합)이다. 컴퓨터의 용량이 커지고 알고리즘이 발전하면서 알파고는 프로 바둑기사가 생각하는 경우의 수를 대부분 계산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세돌이 계산하는 경우의 수는 알파고가 계산하는 경우의 수의 부분집합이 돼버린다. 다만 이세돌이 계산하는 경우의 수 일부는 알파고의 경우의 수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이번 4국에서 보듯이 가끔은 인간이 승리한다. 그렇더라도 반복해서 시합을 하면 알파고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
주가를 두고 임의보행(random walk)이라고 한다. 오늘의 주가는 새로운 정보에 따라 움직이지 오늘 이전에 있던 정보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공지능이 세상에 있는 오늘까지의 정보를 모두 모아서 분석해본들 내일의 주가를 예측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펀드매니저는 바로 이 미래의 영역을 두고 싸워 왔다. 힘겨운 싸움인 만큼 상당수는 시장의 성과에도 미치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펀드매니저를 존재하게 한다.
투자 부문에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지금까지 사람이 하던 분석을 더 빠르고 더 광범위하게 해서 멋진 분석 보고서를 내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정보를 분석해서 신뢰성 있는 보고서를 뽑고 그중 가장 공통된 의견들을 뽑아서 정리해줄 수 있다. 사람이 보는 정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많은 정보를 검토할 것이다. 사람이 자는 밤에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존의 정보를 정리하고 패턴을 찾는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의 주가를 판단해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보장은 없다. 미래의 주가란 미래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인공지능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낫다는 것과 인공지능과 사람의 성과는 누가 나을지 모른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전자는 하나가 나머지를 지배해버리면 부분집합은 존재 이유가 없다. 하지만 후자는 나름의 특성이 있으므로 각자 존재 이유가 있다.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바둑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판단하는 투자시장은 다른 차원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있더라도 펀드매니저는 사라지지 않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