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쿠바 가보니 이중화폐에 어리둥절…50년대 '올드카' 거리 누벼

[임종건의 쿠바 경제 기행] <하>

외국인 거래-내국인용 화폐 달라

한달 월급으로 신발 한켤레 못 사

中버스 관광지 누벼 G2 위상 실감

고물차 관광은 향수 자극하기 충분

쿠바는 무역수지 만성적자의 나라다. 2014년의 무역수지는 수출 32억달러에 수입 104억달러로 72억달러 적자다. 관광수입과 해외 교민들로부터의 송금이 적자를 메우는 구조다. 쿠바의 수출 주종품은 광물로는 니켈, 농산물로는 설탕이지만 두 품목 모두 90년대 이후 국제시세가 떨어져 무역적자의 원인이 됐다.

쿠바 여행에서 부닥치는 첫 번째 혼란은 이중화폐 이중환율의 문제다. 쿠바에는 CUC와 CUP로 불리는 두 가지 화폐가 있다. 전자는 외국인과의 거래에 통용되는 돈으로 달러 또는 유로와 거의 1대1로 교환된다. 후자는 내국인용 통화로 쿠바인들이 월급으로 받는 돈이다.

통제경제의 상징인 이중 화폐제도는 쿠바 경제의 왜곡을 가져오는 큰 원인이다. 정부 통계에도 CUC와 CUP가 뒤섞여 1인당 GDP가 5,000 달러~1만 달러로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두 화폐 간의 교환비율은 1CUC에 25CUP다. 쿠바인의 평균 월급 600CUP는 24CUC, 즉 24달러에 불과한 셈. 정부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도, 교사도, 의사도, 공장의 노동자도 그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한다. 정부가 배급하는 기초생필품을 살 때 주로 쓰이는 돈이 CUP다.

그러나 수퍼마켓에서 CUC로 표시되는 물가는 달러나 유로 경제권의 가격과 비슷하다. 신발 한 켤레에 20~30CUC를 내야 한다. 한 달 월급으로 신발 한 켤레도 사기 어렵다는 얘기다. 모자라는 부분은 장사를 하거나 미국 등 해외 친척들이 보내주는 송금으로 채우고 있다.

이런 실정이니 쿠바에서 가장 수입이 좋은 직업은 CUC를 벌 수 있는 외국 회사에 다니거나, 택시운전사, 관광안내원 등이다. 대학교수를 버리고 택시운전을 하는 이유다. 이런 가격의 왜곡이 교육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유능한 인재의 해외 유출 원인이 된다.

광활한 농토 놔두고 곡물 수입

쿠바는 남한을 반으로 오므려 한반도 길이만큼 늘려 놓은 모습이다. 면적은 10만㎢, 동서 길이는 1,200㎞. 국토의 중앙에 총연장 500㎞ 쯤의 왕복 6차선 고속도로가 개설됐고, 나머지는 왕복 2차선 도로다. 집권 50년 동안 국토 종단 고속도로 하나 못 만든 것은 정부의 무능 탓이 커 보인다.

말이 고속도로일 뿐 운영은 일반도로나 마찬가지다. 국제 통용의 고속도로 표지판도 없고, 인터체인지도 2~3시간 가야 눈에 띈다. 중간에 도시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하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800여㎞의 길은 가도 가도 황무지의 지평선뿐이다. 이런 땅을 놔두고 식량의 80%를 수입해다 먹는다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고속도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길가에서 돈을 흔들면서 태워달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현지 안내원이 쿠바인들이 잘하는 운동은 야구 복싱 그리고 히치하이킹이라고 농담을 한 바로 그 히치하이킹이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워 행인을 태워준다니 인간적인 고속도로다.

관광지 누비는 중국 버스

중국의 G2 위상은 쿠바에서도 확인된다. 쿠바 관광의 견인차가 중국제 ‘유통(宇通 Transtur)’ 관광버스다. 대략 5,000대가 독점적으로 쿠바 전국을 누비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쿠바는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지불능력이 없는 쿠바가 2년 외상조건으로 들여온 차들이다.

현대차는 그런 거래를 할 수 없는 걸까? 2014년 한국의 대 쿠바 수출이 5,000만달러에 불과한 현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바나 무역관이 열리기도 전인 2005년 현대중공업이 7억2,000만 달러 규모의 이동식 발전소 건설공사를 해냈다.

향수 자극하는 올드카 관광



하바나 도착 후 감기 기운이 왔다. 거리에 나서자 기침이 심해졌다. 고물차들이 내뿜는 불완전 연소의 매연이 역하고 독했다. 거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1950년대 미국의 포드나 GM이 만든 온갖 브랜드의 올드카들이다.

올드카 관광은 쿠바가 개발한 기발한 관광상품이다. 시간당 이용료가 30~35 CUC. 하루에 잘 벌면 다른 직장인들 한 달 월급 정도를 번다는 계산이다. 택시기사가 최상의 직업인 이유를 알만하다.

승용차 화물차 가릴 것 없이 다른 차들도 올드카와 동년배들이다. 가끔 눈에 띄는 현대 기아차는 새 차에 속한다. 한국 차보다 훤씬 많이 눈에 띄는 차가 구 소련제 소형 라다 승용차다.

놀라운 것은 이런 고물차의 가격이다. 국내에서라면 돈을 주고 폐차해야 할 차들인데 보통 1,000만 원 이상이다. 현대의 신형 산타페는 4억 원을 줘야한다고 정덕래 하바나 무역관장은 귀띔한다. 정부의 수입억제와 자의적 가격책정이 가져 온 왜곡이다.

올드카 관광은 서양인들 특히 미국인들에게는 좋던 시절의 향수를 즐기는 기회다. 미국의 낡은 차를 수리해서 관광산업에 활용하는 쿠바인들이야말로 얼마나 알뜰한 친미주의자들인가. 미국은 왜 이런 나라와 반세기 넘게 적대해야 했는지 되레 의아해졌다.

핵무용론 체득한 카스트로

카스트로는 8년 전 미국 대선 때부터 아프리카 계 미국인인 오바마 후보에게 동질감을 표시했고, 당선 후 줄곧 화해신호를 보냈다. 임기 말에 와서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의 기대에 부응한 셈이다. 라틴국가들이 한 목소리로 미국에 쿠바경제봉쇄 해제를 요구한 것과, 미국과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 역할도 컸다고 한다.

미·쿠바 수교를 보며 16년 전 클린턴 정부 말년에 클린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려 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때 부시 대통령 당선자가 클린턴의 방북을 저지했다. 한반도 상황에 전기를 만들 기회가 무산됐다. 부시정권 8년, 뒤를 이은 오바마 정권 8년 동안 북미관계는 악화일로를 걷다가 지난 2일 유엔 안보리가 북한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쿠바와 북한의 행로가 정반대인 것은 핵무기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쿠바사태 때 핵의 무용론을 체득한 사람이다. 전력난을 겪으면서도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았다. 김정은에겐 카스트로의 경험과 지혜가 없다. 그런 안타까움을 가슴에 안고 하바나를 떠나왔다.

하바나 시내의 한 수퍼마켓에 삼성 로고가 들어있는 진열대 위에 삼성잔자 TV가 놓여있다. 가격표에 698.95CUC(17,450CUP)로 적혀있다. 쿠바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24CUC임을 감안하면 2년 반 동안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초고가품이다.




하바나의 관광명물인 올드카 관광. 고물차보다는 골동차 인식을 주었다. 특히 미국의 관광객들에게 1940~50년대 미국 전성기의 향수를 즐기게 하는 추억의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쿠바 내에서 중국의 위상을 말해주는 중국산 유통 관광버스. 어느 도로를 가든지, 어느 관광지를 가든지 관광버스는 모두 유통 버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