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부터 의지와 끈기를 갖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준다. 특히 자신감이 부족한 독자들에게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기업인, 리더들의 이야기는 도전 의식을 불어 넣는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것은 지식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해낼 수 있다는 믿음, 지금은 악조건이지만 미래에는 어떤 형태로든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 등을 구매하는 것이다. 유난히 자기계발서와 토크 콘서트가 설득력을 얻는 한국의 지성계 행태가 괜히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아니다. 종교는 부담스럽지만, 정신적 힘은 갖고 싶어하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흙수저의 성공신화’는 심령 부흥회 또는 법회와 같은 설득력을 갖는다.
요즘은 이런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들을 ‘멘토’ 라고 부른다. 특정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함께 열정과 희망 등을 끼워 마케팅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부정적인 현실을 치밀한 시선으로 분석하는 사람은 멘토가 아니라 전문가일 뿐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쉬운 화법과 적절히 포장된 이미지로 ‘감동 드라마’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멘토가 될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깊은 철학과 사상을 가졌는지는 궁금해 하지 않는다. 눈 앞에 보이는 이미지가 핵심이다. 그래서 요즘 멘토들은 자신을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데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다. 스피치 강사나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기업인들이 주목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방송가에서 흔히 ‘멘토’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제대로 된 업계 경력 또는 학력으로 검증받지 못한 ‘사기꾼’이라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니 요즘 들어 에너지, 디자인, 핀테크 등 일반인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적절한 경력을 갖고 멘토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흙수저’였다고 강조한다. 어려운 어린 시절, 온갖 한계와 차별을 극복하고 성장했으며, 한 분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로 성장했음을 힘주어 말한다. 그런데 정작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전문성을 대변할 만한 핵심 지식이나 통찰 같은 것들은 휘발해 버리고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해당 내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멘토가 아니라 ‘이론가’로 낙인찍히기 쉽다. 이렇다 보니 어떤 멘토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책을 집필하기 위해 대필 작가를 이용해 글을 ‘찍어 내기도’ 한단다. 강연 스킬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정말 멘토라고 여기며 내버려 둬야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제대로 된 인물을 검증하기 전에 감동 포인트부터 발견하려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급속도로 현대화화고 성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 동시대에 나타나다 보니 생겨나는 혼란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코드를 소비하는 시대이기에 이제 사기꾼들도 얼마든지 자기가 오피니언 리더임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안타깝게도 미디어나 학계나 업계나 그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걸러 낼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진실보다 감동을 중시하는 우리의 습성이 제일 주된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무엇인가 가장 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드라마의 노예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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