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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금융위기와 건망증

조영제 한국금융연수원장





얼마 전 세계 주요 헤지펀드 회장들이 모였다. 이들은 현재 글로벌 금융 시장 상황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원흉으로 지목된 위험한 금융상품들이 다시 등장했고 그 당시 규모를 넘어섰다. 결국 금융위기로부터의 교훈은 잊힌 셈이 됐다.

금융위기는 광기에서 시작한다.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등장한 마약 같은 신종자산들이 매력적인 시장을 형성하면 탐욕가들의 구미를 당긴다. 자연스레 돈이 몰려들고 신용이 급증하면서 광기가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자산가격은 폭등하고 거품이 형성되며 부실은 가려진다. 그러다가 거품이 꺼지면 탐욕가들은 패닉에 질려 혼비백산 자산 처분에 나서고 돌리던 폭탄을 들고 있던 금융 회사들은 순식간에 파산으로 내몰린다. 참사 같은 붕괴가 발생하고 경제 전반에 가공할 충격이 미친다.

쓰라린 경험에도 금융위기가 잊힐 만하면 되풀이되는 것은 ‘돈 앞에서 인간과 시장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 때문이다. 오랜 금융 역사에서 반복된 ‘광기-거품-붕괴’의 질긴 악순환을 보면 인간의 탐욕과 투기적 광기, 무모한 쏠림 현상을 원천 봉쇄하기가 그토록 어려움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두 차례 금융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정부, 기업, 그리고 ‘금 모으기’로 일어선 국민의 단결로 단기간에 극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국제 공조로 잘 비껴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얼마 전 그리스의 국가 부도 위기 대처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그들보다 한층 성숙하고 현명한 국민임을 알았다. 그러나 최근 경제 환경이 악화하면서 또다시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조선·해운 등 기간산업이 무너지고 금융 시장에서도 불안감이 감지되고 있다.



한동안 우리 조선업은 기술력·수주량 등에서 세계 일등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호황에 취해 있던 때 중국 조선업의 추격,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선박 수요 감소와 선주들의 발주 여력 저하 등 큰 흐름을 읽지 못했다. 오히려 양적 확장에 몰두했고 결국 후유증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해운업도 한창 좋을 때 마냥 그럴 줄 알고 선박을 고가로 장기 임대한 것이 화근이 됐다.

합리적 욕심은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제는 일이 잘 풀릴 때 어디서 멈춰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알아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호황으로 느낄 때 더욱 그렇다. “음악이 계속되는 한 게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한 어느 투자은행 대표의 말은 설사 잘못된 길임을 알았더라도 호황일 때 멈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알려진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비록 우매하게 탐욕의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하더라도 현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악순환의 늪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당국은 당국대로 과거의 위기 극복 경험을 되살리고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상황을 타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은 정치권도 언론도 당국에 힘을 실어줄 때다. 우리 국민은 위기 때 늘 강했다.

조영제 한국금융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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