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주의 도입 갈등이 법적 분란으로 치닫는 양상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과주의가 근로자에게 불리한가 유리한가를 놓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근로기준법 94조 때문이라고 하는데, 어떤 배경인지 보도국 정훈규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앵커]
최근 금융공기관들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죠?
[기자]
네, 지난달 까지만 해도 금융공공기관 9곳중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곳은 예금보험공사가 유일했는데요. 이번 달 들어 6곳이 도입을 확정했고 이제 수출입은행과 예탁결제원 2곳만 남은 상태입니다.
[앵커]
Q. 지지부진하던 성과주의 확대 도입이 진척을 보이는 것 같은데, 과정은 매끄럽지 못한가 봅니다. 노조는 고소·고발에 나섰고, 근로기준법 94조가 계속 거론되는데 배경이 뭡니까?
[기자]
네, 이번 달 들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금융공기관들이 노조와의 합의 없이 개별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받고, 이사회를 통해 처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요.
사측의 일방적인 태도에 격분한 노조가 대응수위를 높여 이사회나 경영진을 고소·고발하면서,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 갈등은 법적 분란으로 치닫게 된 겁니다. 여기서 노조가 사측이 법을 어겼다고 소송에 나서게 된 토대가 바로 근로기준법 94조인데요.
산업은행 노조가 이동걸 회장을 비롯한 점포장급 이상 간부 180명 전원을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한 상태고, 기업은행 노조도 “사측의 불법행위에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는 등 줄 소송전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Q. 그렇다면 앞으로 소송전에서 근로기준법 94조가 핵심인 셈인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기자]
네, 근로기준법 94조에는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그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있습니다.
노조는 사측이 동의를 얻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이사회 처리를 했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더욱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앞두고 몇몇 기관들에서는 노조가 찬반 투표를 했는데, 대부분 90%에 가까운 반대표가 나온 바 있습니다.
[앵커]
Q. 사측이 노조와 합의를 하지 않았으니, 언뜻 듣기에도 앞으로 법적 공방에서 불리할 것 같은데, 사측은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겁니까?
[기자]
네, 우선은 금융당국이 성과연봉제 도입 지연 기관에 예산을 제한할 뿐 아니라 각 기관장들에게도 책임을 묻기로 하면서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인데요.
특히 최근 이사회 처리 강행은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있습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2일 “금융·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선도해야 하고, 노조가 협의를 계속 거부할 경우 노조 동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노조 동의 없이도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이 합법적이라는 사실상의 유권해석을 내려준 셈입니다.
[앵커]
Q. 고용노동부 장관이 근로기준법 94조를 모르고 있진 않을 텐데, 같은 법을 두고 시각이 완전히 다르군요?
[기자]
네, 근로기준법 94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경우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경우입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성과연봉제는 임금총액이 감소하지 않고 다수가 수혜대상인 만큼 근로자 불이익으로 볼 수 없고, 법 위반이 아니라고 본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정기준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도 “노사 합의를 권장하지만 판례와 관계법령 등에 따라 개별 기관이 의결하거나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사회 결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앵커]
Q. 그래서 성과연봉제가 근로자들에게 불리한가 아닌가를 두고 논란이 일어난 거군요.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뤄질 것 같은데,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기자]
네, 노동법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입니다.
우선 이사회 처리를 위법이라고 보는 쪽에서는 성과연봉제로 득을 보는 직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도 있기 때문에 다수가 수혜자라 할지라도 포괄적인 의미에서 ‘불리한 취업규칙’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이사회 처리를 합법으로 보는 쪽에서는 수혜를 보는 쪽이 있지만 피해는 없다는 주장인데요. 성과연봉제 도입이 앞으로 임금이 얼마나 오를지에 차등을 두는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적게 오른다고 해서 손해를 봤다거나, 불리한 취업규칙으로 보기 어렵다는 겁니다.
[앵커]
전문가들 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보니 금융권 성과주의 논란이 쉽게 사그라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 기자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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