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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 반대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교수

'불법행위 억지력' 실증적 자료 없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으로 우리나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찬반 논쟁이 거세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기업 등이 의도적·악의적인 불법 행위로 손해를 입힐 경우 민법의 실제 손해배상 기준을 훨씬 넘는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하는 가중처벌 제도다. 야당의 도입 요구가 거세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통과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제도 도입 찬성 측은 응징을 통해 가해 기업을 단죄하고 유사행위의 재발도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반대 측은 기업의 불법 재발 가능성을 억지할 수 있다는 명확한 데이터가 없을뿐더러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민사법 체계도 흔들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김선정 동국대 법학과 교수




마약이 무섭게 퍼지니 청소년들이 그 폐해를 알 수 있도록 교과서에 넣어야 한다는 건의가 있었다. 인터넷에서 만화를 불법 다운로드한 중학생 수십만명이 전과자가 될 처지니 저작권법을 가르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자 게임 절제, 가정폭력 예방과 공중도덕, 기초질서, 금융교육, 비만 예방, 심지어 태극기 다는 방법을 교과서에 넣자는 말까지 나왔다. 교과서는 1만쪽이 되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 끝을 알기 어려운 비합리적 상황은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론에서도 마주한다. 제조물 피해, 불공정거래, 독과점, 투자자 손실, 개인정보 침해가 심하다는 명분을 시작으로 근로자 피해, 대기업 횡포, 남녀차별이 근절되지 않아서, 성폭력이나 성희롱이 만연해서, 그리고 식품ㆍ보건ㆍ환경은 생명에 직결된다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징벌적 배상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줄지어 나온다. 이미 산업재해, 장애인 차별, 전자상거래, 방문판매, 유사수신 등에 대한 건의가 있었다.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많다. 하지만 모두 고액 배상의 방법으로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다양한 가치를 지니는 사회에서 우선순위를 다투다 보면 결국 사회적 갈등으로 번진다. 필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무익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그것도 신중하게 도입이 고려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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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효과에 의문이 간다. 도입 찬성론자들은 자신 있게 외국의 입법 사례를 든다. 그러나 이 제도가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아니다. 도입 찬성론자들은 이 제도가 과거 행위를 얼마나 잘 응징하고 있는지, 앞으로의 재발 가능성을 어느 정도 억지하는지, 쉽게 말해 이 제도 도입으로 그 사회는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법경제학적 또는 실증적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의 내용뿐 아니라 한편에서 이 제도를 제한하는 입법 동향도 살펴야 한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법 체계의 혼란을 가져온다. 단행법률을 제정할지 아니면 민법 등 적당한 곳에 끼워넣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당장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는 민사법 체계를 흔든다. 개인의 손해배상 소송에 편승해 국가형벌권의 목표를 실현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것이 벌금이나 과료 같은 형사벌(刑事罰)이라면 그 배상금은 개인에게 갈 것이 아니라 국고로 귀속될 일이다. 이것이 과태료·과징금·이행강제금 같은 행정제재라도 사리는 같다. 국가는 개인의 과거 행위에 대한 응징보다 사회 전체에 대한 안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셋째, 그 목표와 수단의 정당성이다. 문제가 발본색원되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쉽게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러나 치밀한 제도 설계는 뒷전이다.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을 비롯해 기간제법과 신용정보법에 도입돼 피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3배 손해배상은 소송비용이라도 보태주자는 것으로 사실은 실손해배상에 가깝다. 외국의 제도를 먼발치에서 보고 전가의 보도인 양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제로 미국의 여러 주에서 이 제도는 변형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과도한 벌금을 금지한 연방수정헌법 제8조, 적법 절차를 규정한 제14조 위반의 위헌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는 유사한 제도 도입을 미뤘다. 우리 헌법상으로도 과잉금지, 비례원칙 위반의 시비가 일 수 있다.

넷째, 사회적 비용이 크다. 연목구어 식의 복잡한 입법 목적, 세부적 기준 없이 배상액을 산정해야 하는 사법부의 재판 부담, 이중 지급이나 대위책임 등에 따른 기업이나 단체의 책임 등 비용을 증가시킨다. 이 제도가 집단소송이나 배심제와 결부될 때 소송사회의 폐해도 우려된다. 이 소송에는 원ㆍ피고 모두 변호사 소송대리인 선임을 의무화하자는 입법 제안도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입법이라고 해서 즉시 법이 폐기되거나 개정되는 일은 드물다. 오히려 그 오류를 감춘 채 법안을 발의한 정부부처나 의원의 체면상 연명하는 법률이 허다하다.

다섯째, 제한된 영역에서만 허용하자는 이야기도 함부로 할 말은 아니다. ‘제한적 허용’이라는 말은 매우 신중하고 자제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잘못된 입법일수록 전염력이 강하다. 특히 사회적 관심을 끄는 주제에 대해서는 ‘선례’가 있었다는 이유로 예외가 원칙으로 둔갑한다.

필자는 하도급거래공정화법의 3배 손해배상제도가 징벌적 손해배상인지 의심한다. 그러나 도입한 지 5년이 지났으니 지금쯤 그 효과부터 분석해보자. 그리고 실손해배상을 엄정하게 집행하자.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 확산보다 확실한 집행이 우선이다. 가해자들이 불법을 감행하고 반복하는 이유의 하나는 모든 불법 행위가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 불완전집행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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