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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종자의 길을 가련다

  • BY ELLEN MCGIRT
  • 2016-06-21 11:10:51
  • 기획·연재
지난 3월 더블린 외곽 자택 근처에서 포즈를 취한 보노.
아일랜드 록 음악의 아이콘 보노 Bono는 현재 널리 칭송 받는 데이터 기반 글로벌 조직을 이끌고 있다. 이 조직은 각국 정부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 경영진을 규합하고, 빈곤층을 위해 수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그 비결은 보노 자신이 리더로 나서는 대신, 다른 이들이 스스로 진정한 변화의 리더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음악계의 전설로부터 기업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자.


“왜 모두가 이 사실을 널리 퍼뜨리지 않는 거죠? 엄청난 소식 아닌가요?” 아일랜드 밴드 유투 U2의 리드싱어 보노가 청중에게 호소했다.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 Madison Square Garden에서 열린 이노센스 앤드 익스피어리언스 투어 Innocence and Experience Tour 넷째 날 밤이었다. 두 개의 기본 무대와 하나의 통로형 무대, 그리고 무수히 많은 대성당 규모의 디지털 스크린에서 멀티미디어의 향연이 펼쳐졌다. 1억 7,5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22번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역사상 최고 수익을 낸 월드 투어를 진행한 밴드라면 당연하게 여겨질 법한 거대한 규모의 록 앤드 롤 공연이었다. 하지만 그때 보노가 호소하는 대상은 공연을 보러 온 팬들이 아니었다.

유투 열성팬들이 2015년 7월 콘서트 관람을 위해 공연장에 몰려드는 동안, 올해 55세인 이 그룹 리더는 3개 층 위에서 열린 전혀 다른 간이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정렬된 의자들과 공연 장비 뒤, 커튼으로 만든 임시 장소에서, 그는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Nancy Pelosi를 맞이했다. 그는 펀드 매니저의 어깨를 두드리며 따뜻한 어투로 “우리가 에이즈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30명 가량의 귀빈을 맞이한 그의 입에선 통계 수치들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듯 쏟아져 나왔다.

유엔이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신규 HIV 감염 건수가 35% 하락했고, 에이즈 관련 사망자 수는 41% 감소했으며, 예상보다 수백 만 명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생명 구제 약품을 얻고 있다. 보노는 마치 록스타가 아니라 전염병 전문가처럼 이 소식을 전했다. 그렇다. 그는 록스타인 동시에 전염병 전문가다.




보노는 청중 속에서 잠재적 동지를 발견했다. 조지 W. 부시 George W. Bush 전 대통령의 딸이자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손녀인 바버라 부시 Barbara Bush다. 보노가 1990년대 초 유투의 ‘주 투어 Zoo Tour’ 콘서트에서 짓궂은 장난 전화를 했던 상대이지만, 지금은 용서를 받은 상태다. 보노는 바버라 부시에게 그녀의 쌍둥이 자매 제나 부시 해거 Jenna Bush Hager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난 주에 그녀를 만났는데, 아이 때문에 배가 많이 불렀더군요. 얼마나 아름답던지!”라고 말을 건넸다. 그런 후 가까이 다가가서 작게 얘기했다. “알고 있겠지만, 당신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싶어요. 일주일 정도 이미 시도를 했거든요.”

세계는 지금 2030년까지 에이즈를 박멸하기 위한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해있다. 그녀는 이런 얘기를 들어봤을까? 보노는 2013년 시작된 ‘에이즈 퇴치를 위한 대통령 비상계획’ 펩파 Pepfar(President’s Emergency Plan for AIDS Relief)에 대해 “당신 아버지도 이 계획에 한몫 했어요”라고 말했다. 펩파의 법제화를 통한 에이즈 퇴치 싸움에 현재까지 약 600억 달러의 자금이 조성됐다. 현재까지도 단일 전염병 퇴치 목적으로 만든 최대 규모의 국가 재정계획으로 남아있다. 이 계획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법안이 통과되자, 치명적이고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창궐하던 질병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보노는 “미국인들은 스스로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후에 그는 이 메시지를 호소력 짙은 정치 슬로건으로 바꾸었다. ‘당신이 납세자라면, 당신은 에이즈 퇴치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 슬로건은 보노의 리더십 각본에 따른 전형적인 ’작전구호‘를 반영하고 있다. 1단계, 모든 성공의 공을 자유롭게 퍼뜨린다. 2단계,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이 사명에 필수적인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3단계, 더 많이 도움을 요청한다. 1단계부터 3단계까지를 반복한다.

혹시라도 보노가 다보스 Davos에 참석하는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어설픈 유명인’으로 생각된다면, 그의 과거 행적을 확인해보라. 빈곤, 특히 아프리카의 빈곤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고, 정부와 대기업이 빈곤 퇴치를 위해 협조하도록 만든 영향력 측면에서 보노보다 더 큰 성과를 낸 인물은 별로 없다. 보노의 ‘로비’ 활동은 주빌리 2000 Jubilee 2000 글로벌 캠페인과 함께 시작했다. 영국 경제학자 앤 페티포 Ann Pettifor가 시작한 것으로, 새천년이 도래할 때까지 최빈국 부채를 탕감해주라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요구한 캠페인이다(49년마다 빚을 탕감해주고 노예를 풀어주라는 성경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보노는 신실한 기독교 신앙에 호소한 그 개념에 감명을 받았다. 결국 이 록스타는 1990년 후반, 당시 미 재무부장관 래리 서머스 Larry Summers의 집무실을 방문해 더듬거리면서 자신이 사전에 준비한 발언을 했다. 보노는 당시 서머스의 수석보좌관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로비 활동가로서의 자신의 경력은 그 자리에서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목표 자체보단 그 뒤에 있는 전략이 보노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콘서트를 창시한 뮤지션 밥 겔도프 Bob Geldof는 보노가 수치적인 측면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보노는 “공연으로 우리가 모금한 금액이 1억 2,500만 달러인데, 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부채 이자로 매일 지불하는 금액보다도 적었다”고 말했다. 이는 화려한 자선 공연을 계속 열어도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채 탕감이야말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교육, 인프라, 보건 등에 사용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주빌리 2000을 통해 세계 35개 최빈국 부채 1,000억 달러 이상이 탕감됐다. 그러나 보노에게 중요한 건 그 결과만이 아니었다. 그 뒤에 있는 전략도 중요했다. 부채 탕감은 ‘영향력’을 영리하게 활용한 사례였고, 그 아이디어는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2005년 보노는 원 One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는 의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빈곤한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게 하는 자발적인 운동이다. 원 캠페인의 지원 대상은 펩파(생명을 구하는 항레트로바이럴 치료제를 꾸준히 제공한다)를 비롯해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현지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하는 제네바 기반 비영리 단체 글로벌 펀드 Global Fund, 아동에게 필요한 백신을 제공하는 민관 파트너십 가비 Gavi, 현재 보노가 특별히 애정을 보이고 있는 일렉트리파이 아프리카 액트 Ele Act 등이다.




일렉트리파이 아프리카 액트는 2015년 12월 의회에서 통과됐고, 2월 서명을 통해 법제화됐다. 이 법안의 목표는 현지 민간 투자 지원을 통해 사하라 남부 5,000만 주민들에최초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다. 교착 상태에 있던 의회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통과됐지만, 목표 달성을 위해 1년간 노력했던 원 캠페인 관계자들로선 불확실한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원 캠페인의 원동력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렛대 역할을 하는 영향력(leverage)’이다. 보노 자신의 공헌을 확장하는 메커니즘이라 생각하면 된다. 같은 생각을 하는 활동가 700만 명의 목소리를 극대화하는 묘수 같은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10년 동안 자발적 활동가들은 목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의원들을 상대로 팩스를 보내고, 전화를 걸고, 서한을 쓰고, 트위터를 보내고, 직접 방문도 했다. 이들은 생색만 내는 활동가들이 아니다. 예산책정 과정의 세부 사항부터 의회 에티켓까지 수준 높고 세밀한 교육을 받고 있다. 또 아프리카의 보건, 교육 및 에너지 보안에 대해 의회 수준의 브리핑도 받고 있다.

여느 비영리단체들처럼 원 캠페인 내 자발적 활동가들의 정치적 성향은 놀라울 정도로 구분이 어렵다. 최소한 수사학적으로는 분명한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단체 자체가 보노만큼이나 철저하게 초당적인 모습을 보인다. 견고하면서도 포용적이며, 기업을 악인으로 보지도 않는다. 델라웨어 Delaware 상원의원 크리스 쿤스 Chris Coons는 “의회에는 그들 같은 존재가 없다. 매년 찾아오는 그들은 예의가 바르다. 준비가 돼 있으면서도 끈질기다”고 표현했다.

초당적인 접근방식은 펩파를 통해 정점을 찍었다. 보노가 사우스 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제시 헬름스 Jesse Helms의 마음을 바꾸게 만든 아티쿠스 핀치 Atticus Finch 스타일의 이야기는 지금도 의회의 전설로 남아있다. 보노는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일에 손사래를 쳤다. 그는 “내 공로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연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반대세력’을 상대하는 방법은 찾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1980년대 종교적 우파 진영에서 헬름스보다 에이즈 퇴치 자금 지원에 반대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는 성적소수자(LGBT) 공동체를 ‘변태’이자 동성애자 질병에 걸린 ‘나약하고 도덕적으로 병든 가여운 존재’라고 몰아세웠다. 보노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부채 탕감 캠페인 때 함께 일했던 복음주의자 신앙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활용, 펩파 추진을 위해 보수적인 의원들과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보노 스스로 매우 친숙한 ‘데이터’와 ‘신앙’이라는 두 언어를 앞세워 대화를 풀어나갔다. 보노는 “그들에게 HIV와 초기 신약성서의 한센병이 명백히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 싸움은 해외 원조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마침내 헬름스와 마주 앉은 보노는 고난을 다룬 마태복음 25장을 인용했다. 그는 “심판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 질병에 대처하는 일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역 한 가운데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헬름스는 큰 감명을 받았고, 그래서 축복을 빌고 난 후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에이즈 퇴치 자금 지원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직접 백악관을 상대로 로비 활동도 진행했다. 크게 즐거워했던 부시 대통령은 지원 계획 발표 당시 “딕 체니 Dick Cheney 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와 ‘제시 헬름스가 보노의 생각을 들어보라고 합니다’고 알려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80세였던 이 상원의원은 그 후 유투의 팬이 되었고, 그들의 콘서트가 마치 부흥회인 것처럼 계속 참석을 했다. 미 정계 관계자들도 진짜로 놀랐다. 밴드 동료 에지 Edge를 비롯한 보노의 진보 성향 지인들도 깜짝 놀랐다. 펠로시는 “진정한 기적이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보노는 이를 좀 더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흔들림 없이 뭔가를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비좁은 이념적 시각에 박힌 구멍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목표 달성을 위해 예상 밖의 인물들과도 대화하는 흔치 않은 그룹’으로 생각하려 한다.”

이는 세대 전체에 영향을 미친 메시지였으며, 원 캠페인의 지속적인 강점 중 하나가 되었다. 유투가 지난해 7월 마침내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에 섰을 때, 보노는 바로 직전 환영식에서 젊은 바버라 부시와 했던 약속을 지켰다. 그는 자신의 록 앤드 롤 팬들에게 에이즈 퇴치 싸움의 성과를 다룬 유엔 보고서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청중이 아마도 잊었을 법한 이름을 꺼냈다. 보노는 “부시 대통령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한다”고 외쳤다. 청중은 크게 호응했다.




왼쪽: 현지 비정부기관 그린 에너지 아프리카 Green Energy Africa의 제인 아니카 Jane Anika가 케냐 쿠라 지역 마을에서 두 명의 마사이 Maasai 족 소녀들에게 태양광 램프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 2015년 1월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 연례 회의에서 레드 사업 10주년을 기념하며 빌 게이츠와 포즈를 취한 보노.


1단계부터 3단계까지를 반복하라.
“여러분 모두가 여기에 있지 않다면, 헤븐 Heaven에 있고 싶지 않다.” 보노는 다시 한번 청중에게 호소를 했다. 그는 항상 청중에게 호소를 한다. 이번 무대는 헤븐이었다. 헤븐은 르완다 키갈리 Rwanda Kigali에 위치한 식당 이름으로, 한 무리의 또 다른 낯선 그룹이 함께 모인 곳이었다. 때는 3일간의 실사 기간 중 둘째 날. 원 캠페인 관계자들이 글로벌 펀드 대표, 보건 전문가, 안보 고문 등을 비롯해, 이제 유명해진 원 캠페인의 브랜딩 사업 레드 Red와 파트너십을 맺은 몇몇 기업 중역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레드는 2006년 다보스에서 시작된 사업으로, 기업들의 글로벌 펀드 자금 지원과 대중들의 의식수준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탐색하고 있다. 레드의 CEO 뎁 듀건 Deb Dugan은 “우리는 벤처기업처럼 운영된다”며 “사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 마케팅 부서와 긴밀히 협력한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코카콜라, 스타벅스, 나이키 같은 파트너들이 레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해 글로벌 펀드에 지원한 자금은 3억 5,000만 달러가 넘는다. 그 중 애플이 지원한 자금만 1억 600만 달러 이상이다. 레드의 기업 파트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애플의 CEO 팀 쿡 Tim Cook도 보노 개인의 노력으로 동참하게 됐다. 쿡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의 인식 수준을 높이고, 또 상황을 개선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특별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노에 대해 “이상주의와 실천주의를 모두 가진 흔치 않은 성향의 인물”이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만 가지는데, 그는 둘 모두를 가졌다. 그를 신뢰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코카콜라 CEO 무타 켄트 Muhtar Kent 또한 보노를 침이 마르게 칭송한다. “감정과 영혼, 사람의 가치를 그보다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켄트와 보노는 2011년 세계 에이즈의 날(World AIDS Day) 행사에 공식 참여했다. 전·현직 대통령 부시, 클린턴, 오바마, 그리고 보노와 함께 무대에 선 켄트는 레드 사업과의 파트너십을 약속했다. 2011년 이후 800만 달러를 모금한 코카콜라는 2018년까지 600만 달러를 추가 조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모든 것은 글로벌 펀드 지원에 쓰일 예정이다.

코카콜라 CEO는 보노에 대해 “꿈을 크게 꾸면서, 일을 완수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2011년 이후 가까워졌으며 아프리카 전역을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가까워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해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자녀가 한 명씩 있다.

보노를 칭송하는 인사들 중에는 하워드 슐츠 Howard Schultz도 있다. 이 스타벅스 CEO는 “지난해 여름 내가 아킬레스 건 파열 부상을 당했을 때, 보노가 상태를 확인하러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문을 열고 들어와 하루 종일 나와 시간을 보냈다”고 말을 이었다. 슐츠는 둘 사이의 친분을 소중히 여기기도 하지만, 이 록스타의 인도주의 성향과 리더십 능력에 많은 영감을 받은 듯하다. 그는 “보노는 정말 진심으로 받드는 스타일의 리더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노가 무대에 서있을 땐 조명이 밝아 그가 잘 보일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꺼지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그 사람이 진정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짜다.”

빈곤 퇴치를 위한 보노의 싸움에 동지가 된 다른 지인들-유명 셰프 마리오 바탈리 Mario Batali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 부회장 앤 피누케인 Anne Finucane 등-도 그의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키갈리로 합류했다. 2014년 이후 레드 사업에 1,000만 달러를 지원했고, 향후 5년간 1,0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공언한 피누케인은 키갈리를 방문했을 때 그를 도와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녀는 하루 알약 두 개로 생명을 구한 이들의 실제 얼굴과 이름을 접한 뒤 “삶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의회 사절단으로 민주당 상원위원 쿤스와 텍사스 공화당 상원의원 케이 그레인저 Kay Granger도 참석했다. 그레인저는 원 캠페인이 로비를 벌이는 모든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예산책정 소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이날 방문단은 먼저 태양광 패널로 가득 찬 20만m2 가량의 부지를 돌아보았다. 현지에 전기를 제공하는 기가와트 글로벌 Gigawatt Global이 개발한 패널이었다. 손에 마이크를 든 보노는 항상 그렇듯이 록스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과 가죽으로 된 아이템, 거친 부츠에 귀걸이를 하고 보노 익스피어리언스 Bono Experience를 전했다: 약간의 데이터, 약간의 이야기, 약간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그 방에 모인 사람들의 기여에 대해 크게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다.

보노는 쉽게 예상이 되면서도 놀라운 인물이다. 필자는 선글라스-보노는 20년간 녹내장으로 고생했기 때문에 눈 보호용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한다-를 낀 이 사람이 록스타라는 사실을 너무 자주 스스로 상기를 해야만 한다. 13개의 스튜디오 앨범-그 중 7개는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을 낸 유투는 록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에 속한다. 그리고 유투 성공의 일정 부분은 그 독립적 성향에 있다. 보노도 “우리 스스로는 주인이며, 누구에게도 속박 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밴드 맴버들은 기업 권력의 어떤 압박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서로 협력하는 예술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MTV의 설립자이자 원 캠페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톰 프레스턴 Tom Freston은 유투에 대해 “그들의 사운드는 독보적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수십 년간 맴도는 음악을 만들어왔다”고 평가했다. 보노는 음악적인 성장과 함께 사업가의 면모도 갖춰왔다. 2004년 사모투자업체 엘리베이션 Elevation을 공동 설립했는데, 이 업체는 페이스북, 옐프 Yelp, 바이오웨어 BioWare, 판데믹 스튜디오 Pandemic Studios 투자 성공에 힘입어 높은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2014년에는 70억 달러를 운용하는 글로벌 투자 그룹 TPG 그로스 TPG Growth의 특별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 그룹 설립자 빌 맥글라샨 Bill McGlashan은 보노 합류 1년 전에 기타업체 펜더 Fender를 인수했고, 보노에게 그 회사 이사회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펜더의 미래에 대한 보노의 전략적 사고능력에 감명 받은 맥글라샨은 그후 그의 팬이 되었다.

보노 입장에선 음악과 개발 사업, 투자 사이에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각 분야에서 나타나는 그의 지치지 않는 추진력에는 빈틈이 없다. 그러나 그 추진력의 근원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는 다소 모호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알겠지만…”하고 잠시 뜸을 들인 뒤 “가족의 기도(a family prayer)가 있지 않나. 그건 매우 유용한 기도”라고 말한 후 침묵에 잠겼다. 그리곤 “그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설명”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 또한 보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최소한 스스로에게) 그건 개발 사업에 관심이 많은 자신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보노는 “실제 아일랜드는 기아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기억도 가지고 있다”며 “지금도 폭력, 빈곤, 절망을 치유하는 중”이라고 역설했다. “개발 사업은 아일랜드에서처럼 아프리카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본명이 폴 휴슨 Paul Hewson인 보노는 14세 때 어머니를 잃었다. 이 가슴 아픈 사건으로 그는 음악에 심취하게 됐다. 보노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유투 맴버들은 10대 시절부터 더블린 Dublin에 위치한 진보적인 마운트 템플 Mount Temple 고등학교에 함께 다닌 절친한 사이였다. 그들은 “악기를 연주할 수 없어 펑크 로커가 돼야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보노는 그 때 앨리슨 스튜어트 Alison Stewart와 사랑에 빠졌고 결국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그는 지금도 “아내를 만난 그 주에 우리 밴드를 만났다”고 말하길 좋아한다. 보노와 앨리슨 사이에는 4명의 자녀가 있다. 딸 조던 Jordan(26)과 이브 Eve(24)는 둘 다 뉴욕 시에 거주하고 있다. 아들로는 엘리야 Elijah(16)와 존 John(14)이 있다. 보노는 대부분의 삶을 더블린에서 평범하게 보내면서 친구, 가족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이들 중에는 록스타를 그렇게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민감한 부분은 유투가 그들의 회사 중 한 곳을 세금 문제 때문에 네덜란드에 두었다는 점이다. 보노는 이를 영리한 사업방식이라며 공개적으로 방어했지만, 비판을 막아낼 순 없었다. 그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술집에서 듣곤 하는데,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보노는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보노의 아일랜드적 감성과 역사의식이 그에게 다른 이들이 못 본 체할 수도 있는 것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10년 전 보노는 처음으로 키갈리에 위치한 대학교육병원(University Teaching Hospital)을 방문했다. 당시 그곳 소형 침상엔 3명이, 바닥엔 3명이 누워 있었다. 또 치명적인 병에 걸렸는지 확인하는 검사를 기다리며 수많은 사람들이 절망 속에 줄지어 서 있었다. 더 부유한 국가에선 잘 관리되는 병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약품 공급도 없었다. 누가 생명을 살릴 약을 구할 수 있는지, 왜 그러한지-그리고 어떻게 정치적 무관심과 체계적 빈곤이 종종 사람들을 끔찍한 죽음으로 내모는 유일한 이유가 되는지-를 두고 보노는 진지하게 도덕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사는 장소가 생존 가능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가?”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젠 희망을 가질만한 근거가 충분하다. 10년 전 그곳에는 현재 560개의 침상이 대부분 단층으로 된 낮은 건물들에 잘 정돈돼 있다. 각 건물은 외과, 종양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의 전문분야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글로벌 펀드가 세심하게 감시하는 자금 제공 프로그램을 통해 르완다로 7,000만 달러가 지원되기도 했다. 그 결과 HIV에 감염된 르완다 국민에 대한 검사와 지원을 돕는 전국 단위의 보건 시스템이 특히 시골 지역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00년 1만 3,000명이던 에이즈 사망자 수는 2014년 3,000명으로 감소했다. 무엇보다 2014년 HIV 모자 감염 사례가 36건에 그쳤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보노와 원 캠페인 공동설립자들-영국인 활동가 제이미 드러먼드 Jamie Drummond와 루시 매슈 Lucy Matthew-은 지난해 8월 사절단이 방문했을 때, 성과를 자축하는 이례적인 순간을 맞았다(바비 슈라이버 Bobby Shriver는 4번째 공동설립자다). 드러먼드, 매슈, 보노는 주빌리 캠페인 도중 만났다. 그들은 (유투와는) 다른 종류의 밴드 멤버들로 오랫동안 협력을 해왔다. 서로 약어로 이야기하는 그들은 상대방이 시작한 말을 서로 받아서 마무리하고, 그걸 노트북 위에 모아 전략을 세우곤 했다.

드러먼드는 개발 사업에 대해 고민하는 방법을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1990년대 ‘복합적 응급상황’이라 불리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문제들은 세계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 같았던 시기에 발생한 크나큰 인류의 재앙들을 의미한다. 에티오피아는 내전을 겪은 직후였고,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이 세력을 불리고 있었으며, 르완다는 대학살을 겪고 있었다. 그는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건 암울하고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대목에서 언론이 등장하고 록스타들이 콘서트를 개최했다면 어땠을까. 긴급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리 문제를 막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보노에게 모토가 하나 있다면, 성자 프랜시스(St. Francis)의 말이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온 세상에 들어가라. 그리고 필요하다면 말(words)을 사용하라.’ 보노는 “이 말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실천, 실천, 실천이다. 유용해지는 것, 그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다.”

올해 원 캠페인은 자발적 활동가 200명과 미 상원의원 30명(혹은 고위직 관료들)이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특별히 참석자 수가 많은 행사로, 무엇보다 글로벌 펀드의 ‘자금 보충’을 지지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조직에겐 차세대 리더를 훈련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보노는 “지속 가능한 조직을 만들려면 내게만 의지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원 캠페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무언가에 의존성을 보이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활동 중인 원 캠페인 관계자 수는 300만 명이 넘는다. 조직 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집단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회원들 사이에선 메시지의 진화도 이뤄지고 있다. 재정 지원보단 개발 보조에 초점을 맞춰 도움 ‘요청’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르완다 방문 후, 보노와 원 캠페인 및 레드 사업 대표단은 라고스 Lagos에 위치한 코크리에이션 허브 CoCreation Hub를 방문했다. 그 곳은 사회적 영향에 초점을 맞춘 IT 창업가들의 인큐베이션 공간이었다. 그 곳에선 여성 문제, 보건, 올바른 정부 활동, 부패척결에 대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모든 이들이 매월 10억 달러가 증발하는 원유 매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 옹호론자이자 창업가인 오웨이초 아포치 넬슨 Owoicho Apochi Nelson은 “그 자금이 교육에 쓰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고 반문을 했다.

원 캠페인 팀원들이 나이지리아 여권(女權) 문제-조직에선 이 문제의 주요 캠페인으로 ‘빈곤은 가장 섹시하다’ 를 내세운다-에 대해 원탁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보노는 이번 방문의 주요 목표가 “교역과 사업가정신”이라고 주장했다. 보노는 “두 가지가 아프리카 대륙의 극심한 빈곤을 퇴치할 열쇠다. 현재 아프리카에는 수백 만 개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외부 투자를 끌어오지 않고선 일자리 창출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보노는 지난해 6월부터 아프리카 투자에 특히 집중하는 새로운 TPG와 사티아 Satya 간 파트너십에 협력을 시작했다. 보노가 더블린 자택에서 TPG 그로스의 파트너 맥글라샨, 그리고 원 캠페인 이사이자 아프리카 투자자, 개발 전문가인 모하메드 ‘모’ 이브라힘 Mohamed “Mo” Ibrahim을 만났을 때 생겨난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의 목표는 윤리적 운영이 가능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스마트한 대규모 투자방법을 찾는 것이다. 보노는 스스로 자주 반복했던 말처럼 “사업 투자가 사회적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린 저개발 경제권에서 하는 어떤 일에서도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3월 둘째 주 월요일, 보노와 밴드 멤버들은 스튜디오에 돌아왔다(이익 추구를 크게 하지 않는 시기에는 창의성 추구를 목표로 한다). 그들은 올해 후반기 이노센스 앤드 익스피어리언스 투어가 다시 시작될 때를 대비해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유투의 인기 리더는 완전히 철학적 인물이 되어 가고 있다. 보노는 “우리는 (좋은 아이디어면 무엇이든 가져다 쓰는) 정말 도적떼 같은 사람들이었다”며 원 캠페인 초기를 묘사했다. 그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밴드 생활로부터 도입한 자신의 운영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최고의 아이디어는 그 출처에 관계 없이 채택돼야만 한다. 밴드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라도 그렇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도입할 수 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신념을 다음 10년에 적용하고자 한다. “저 밖에 아이디어가 있다.”

보노가 자신을 추종자(follower)라고 말할 때, 그건 그가 그리스도, 특히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람이란 걸 의미한다. 그는 “완장을 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보노는 “나는 진실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무작정 따르진 않는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의심하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아한 변화를 통해, 원 캠페인은 전 세계 정치인들도 추종자-자신이 돌봐야 할 시민을 따르는 추종자-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 보노는 이에 대해 “그들이 책임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여정에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보노는 “최근 병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털어놓았다. 2010년 그는 추간판과 좌골 신경 압박으로 거의 마비에 이르러 급히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유투는 360° 투어의 미국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2014년 11월에는 뉴욕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에서 끔찍한 사이클 사고도 당했다. 눈 주위 뼈와 새끼손가락에 상처를 입고, 왼쪽 어깨 뼈가 골절됐으며, 뼈가 왼팔 피부 6군데를 뚫고 나오는 중상을 입었다. 가장 훌륭한 영혼조차도 육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사건이었다.

보노는 자신과 친한 아일랜드 시인 브렌던 케널리 Brendan Kennelly의 조언을 언급했다. 그는 이 조언이 작곡을 위한 영감으로 쓰인다고 말했다. “정말로 원하는 그 곳-문제의 어두운 중심부-에 이르고 싶다면,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써라. 누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걱정하지 않게 되고, 자존심도 사라진다.”

보노는 그것이 현재 자신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쓰게 될 마지막 노래라고 생각하며 작곡을 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잠시 멈춘 후-그는 역시나 아일랜드인이었다!-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마지막이 아니길 절실히 원한다.”




보노가 거둔 성과들
이상주의 성향의 자본주의자 보노와 유투는 지난 40년 동안 부를 창출하고 분배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 앨범 판매량
유투는 1980년 이래 13개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1억 7,500만 장을 판매해 (대략적인 추산으로) 18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 콘서트 투어를 통한 수익 창출
유투의 2009~2011년 360° 투어는 사상 최대 수익을 기록했다. 라이브 네이션 Live Nation이 집계한 최종 수익은 7억 3,640만 달러였다.

● 보노의 기업활동
보노는 페이스북에 초기 투자한 사모투자업체 엘리베이션 파트너스 Elevation Partners를 공동 설립했다. 그는 (밴드 맴버 에지와 함께) 펜더 기타 Fender Guitars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펜더 소유주인 사모펀드 TPG 그로우스의 고문도 맡고 있다.

● 승승장구하는 NGO 활동
캠페인 사업체 레드는 2006년 이후 에이즈 퇴치 자금으로 총 3억 5,000만 달러를 모금했다. 보노가 나이키, 스타벅스, 코카콜라 같은 거대 기업의 리더들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했다.




● 애플이라는 구심점
2004년 애플은 수천 개의 특별판 유투 아이팟 iPods 박스 세트를 판매했다. 2014년에는 아이튠즈를 통해 무료로 ‘송즈 오브 이노센스 Songs of Innocence’를 발매했고, 이는 유투의 기존 음반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ELLEN MCG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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