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독일 알테나시의 네테스쿨(Nette School)이라는 작은 학교 교사였던 리하르트 쉬르만은 이동학교(roaming School)라는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해 여행과 수업을 함께하는 시도를 했다. 학생들과 교외 지역으로 나가 여행을 했는데 숙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경험했다. 그는 비어 있는 학교나 성 등을 실용적인 숙소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쉬르만은 알테나성을 개조해 ‘알테나성 유스호스텔’을 만들었고 이것이 세계 최초의 유스호스텔이다.
지금은 여행이 별일 아니지만 교통과 치안이 발달하지 않은 19세기 유럽에서는 근교 여행도 큰 비용과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모험이었다. 여가를 보내기 위해 여행을 간다는 것은 부유한 귀족이 아니면 꿈도 못 꾸던 사치였다. 쉬르만의 유스호스텔은 여행을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늦은 1871년에 통일을 했기 때문에 1900년대 초반까지도 지역 갈등이 심했다. 쉬르만이 만든 유스호스텔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학생들이 독일 곳곳을 도보여행하며 서로 교류했고 이를 계기로 ‘철새’라는 뜻의 반더포겔(Wandervogel) 운동이 전개돼 지역통합에 큰 기여를 했다. 독일을 하나로 묶은 민족정신도 작게는 유스호스텔을 기반으로 한 국내여행 활성화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여가나 휴가 기간에 여행을 다니는 것을 장려한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휴가시즌과 겹치고 어린 학생들도 스스로 계획을 세워 여행을 한다. 프랑스는 국토를 삼등분해 시차를 두고 방학을 실시한다. 동일한 시기에 휴가가 몰려 겪는 교통체증과 숙소 부족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는 산업화 시대를 겪으면서 부지런히 일하는 것만을 미덕으로 생각해 한가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아직도 법으로 정해진 휴가 쓰는 것도 눈치를 보고 미안해한다.
이제는 여가와 휴식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잘 쉬는 것도 능력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는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맘 편히 쓸 수 있는 기업문화도 선행돼야 한다. 야근에 찌든 비효율, 피로사회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 경제 저성장을 이겨낼 수 있는 기초체력이다.
일터를 진주로 옮긴 후 가족과 함께 종종 남해안을 찾았다. 통영·남해·거제·하동 그 어느 곳 하나 외국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가볍고 손쉽게 떠날 수 있는 국내여행은 진정한 여가와 치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지방에 멀리 떨어져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지와 친구들까지 만날 수 있다면 더욱 큰 기쁨이 될 것이다.
이제 곧 여름휴가 시즌이다. 남해안도 좋고 지리산도 좋다. 대자연 속에서 재충전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해보자.
임채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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